항목 ID | GC06501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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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영어공식명칭 | Hous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집필자 | 남해경 |
[정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개설]
건축은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담고 있는 총체적인 문화적 산물이다. 무주의 주생활은 무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어 현대까지 이르고 있는 주거 문화의 총 본산이다. 무주에는 한반도에서 인류가 살기 시작한 직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2003년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무주 남대천 2공구 수해 복구공사 부지 내 문화 유적 지표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 토기가 수습되었고,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 일대에서는 마제 석부, 마제 석촉이 발견되었으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일대의 지석묘군을 보면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주는 지역적으로 소백산맥의 준령에 위치한 남부 내륙 지방에 속한다. 기온은 1970년에서 2000년까지 30년간 기록을 보면 연평균 기온은 10.4℃이고, 월평균 기온은 최고가 8월로 28.3℃이고 최저는 1월로 -8.2℃이다. 전체적으로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하며, 겨울에는 장수군 등과 함께 전라북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에 속한다. 강수량은 1,422.1㎜이다. 따라서 주생활은 겨울철에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건축적 요소가 정해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무주의 건축 문화]
무주에는 다양한 건축 문화재가 있다. 만복사(萬福寺)와 같은 사찰을 비롯하여 무주 향교, 죽계 서원(竹溪書院)과 같은 교육 건축, 한풍루(寒風樓), 풍호정(風乎亭) 같은 누정 건축 등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석묘, 고분과 같은 인간의 생활과 관련된 선사 유적은 있지만 주거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울러 주거 문화를 대표하는 주거지나 민가 등도 뚜렷하게 보고된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는 그동안의 농촌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원인도 있겠지만 기록에 충실하지 못한 원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무주의 주거 문화를 추측해 본다면, 선사 시대부터 무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미루어 무주에서도 주생활 문화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주는 전라북도의 동부 산간 지방으로 인접하고 있는 진안, 장수와 유사한 주거 문화를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무주의 누정 문화]
누정은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1층이나 2층으로 누각 건물을 지은 것을 말한다.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누정의 기능은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많고,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모임이나 문중을 기념하기 위해서도 건축되었다. 한편으로 근대적인 의미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잠시 쉴 수 있도록 건축한 모정이 있기도 하다.
무주에는 지역적인 영향으로 누정이 많은 편은 아니다. 무주를 가장 대표하는 누정은 한풍루이다. 한풍루는 2층 누각으로 1층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고,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본래 관아 건물 옆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선조 때 남복시(南復始)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불교 포교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충청북도 영동군에 넘겨졌다가 1971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이외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단종 때 박인정(朴仁侹)이 세상을 등지고 무주에 들어와 살면서 지었다는 돈세정(遯世亭)이 있었다고 하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풍호정이 있었다. 그리고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조선 후기 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지어 시국을 논하였다는 서벽정(棲碧亭)이 있으며,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조선 효종 때 이유태(李惟泰)[1607~1684]가 건축하였다는 초려정(草慮亭)이 있고,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유수(柳壽)가 시를 읊던 사유정(四柳亭)이 있다.
[무주의 전통 주거 문화 - 산간 지역의 살림집]
장수와 진안의 주거 문화는 전라북도 산간 지방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주거의 형태에서 일반적으로 한반도의 남쪽 지방 민가 유형이 따뜻한 기온과 여름철로 인하여 대청과 마루가 발달한 ―자형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진안과 장수, 남원 일부 지방의 경우 산간 지방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도장이 발달한 반겹집 형태가 나타나고 있었다. 즉, 전면에 마루가 있고 후면에 방이 위치하고 있는 유형, 아니면 전면에 방이 있고 후면에 도장이 있는 형태의 살림집이었다. 그리고 도장은 곡식이 귀한 지역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도장의 출입이 안방과 작은방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점 등이 나타났다. 진안 지역에서는 산간 지역의 살림집 형태를 반영하여 고지집, 둑집 등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남원과 장수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지붕을 샛대로 마감한 샛집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태의 살림집들은 산간 지방에서 발달한 형태로 무주와 인접한 진안, 장수, 남원에서 볼 수 있었던 집이다. 따라서 무주 지방에 있었던 주거의 형태는 평면상으로 반겹집의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도장 역시 발달하였을 것이다. 주거의 형태는 고지집이나 둑집, 샛집 등의 형태도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여 볼 때 무주의 주생활 문화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환경에 적합하게 발달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인접한 남원이나 진안, 장수와 같은 산간 지방의 건물 형태를 가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무주군의 전통 주거는 살림방이 있는 안채와 안마당, 헛간채, 창고, 화장실 등의 부속사로 이루어져 있다. 배치는 남부 지방의 일반형인 ―자형과 더불어 =자형, ㄱ자형으로 배치하고 마당을 구성한다. 그리고 안채와 마당을 중심으로 아래채, 헛간채, 문간채가 ㄷ자형으로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안채의 공간은 전면에 마루가 있고 부엌과 안방, 윗방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평면이기도 하다. 안방과 윗방 전면에는 반 칸의 마루가 위치하고 있다. 한편으로 산간 지방에 위치하여 곡식이 적은 관계로 인하여 도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실의 구성에 있어서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주민 황중식 집의 경우 곳간과 광을 부엌과 연결하여 반겹집의 형태를 이루기도 하였다.
건축 재료에 있어서는 무주가 산간 지방이므로 목재가 풍부하여 주로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흙으로 벽체를 축조하였으며, 지붕은 볏짚으로 초가지붕을 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억새를 이용한 샛집도 있었다고 한다. 샛집은 주변 뒷산에서 나는 샛대를 이용하여 지붕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볏짚의 수명이 1~2년인 데 반하여 샛대는 15~20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집은 장수와 남원의 산간 지방에서 보고되기도 하였다.
[설천면 송봉갑 집]
송봉갑의 집은 귀틀집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위치하고 있다. 귀틀집의 구조는 나무를 정(井)자형으로 귀를 맞추어 쌓아 올린 다음 벽체를 축조하는 양식이다. 지름 15㎝~25㎝ 정도의 통나무를 양끝에 홈을 내어 엎을장, 받을장으로 결구하여 네 귀를 짜고 나무와 나무 사이 틈새는 진흙으로 안팎을 메워 벽을 구성한다. 이러한 양식은 태백산맥 부근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무주와 진안에서도 볼 수 있다. 송봉갑의 집은 마당과 안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는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 머릿방과 윗방, 우측에 부엌이 있다. 그리고 마루 뒤에는 큰방이 있다.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자형 평면에 머릿방과 윗방이 반겹집의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이 지역의 날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는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목재 기둥을 세운 다음 귀틀을 엮고 흙으로 벽체를 축조하였다. 지붕은 본래 초가지붕이었다고 하나 슬레이트로 개량하였다.
[무주군 지전 마을]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에 위치한 지전 마을은 무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주생활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무주 지전 마을 옛 담장은 등록 문화재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전 마을은 옛날부터 지초(芝草)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이 언제 생겼는지에 관하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7세기 후반에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뒤편의 남대천 주변에 있는 느티나무를 보면 마을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마을 뒤로는 소백산의 줄기가 형성되어 있고, 마을 주위로 남대천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전면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마을은 크게 4개의 군락으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마을의 공간 구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붕은 새마을 운동으로 인하여 개량되었지만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가 주택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담장은 전체적으로 700m 정도가 되는데 토석으로 축조되었다. 담장의 지붕은 없거나 기와 또는 초가로 마감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전 마을의 주택은 우리나라 다른 지역 농촌 마을의 주거와 마찬가지로 마당과 안채, 창고, 헛간, 화장실 등의 부속사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전면에 마루가 있고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졌다. 추위로 인하여 공간은 비교적 작은 편이다. 최근에 마을 뒤로 흐르는 남대천과 관련하여 숙박 시설인 펜션, 별장 등이 건축되기도 하였다.
[무주군의 주거 현황]
무주군의 인구는 2017년 1월을 기준으로 하면 총 2만 4952명이고, 세대수는 1만 1896세대이다. 이 중 무주읍이 4,188세대로 가장 많고, 부남면이 816세대로 가정 적다. 무주군의 주거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현대화 과정을 겪어 왔다. 즉,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주거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이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현대화를 거치면서 이전의 벽체에 지붕 개량을 한 경우가 있고, 아니면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적조 벽체[벽돌 등]와 콘크리트 벽체 위에 기와지붕이나 슬래브 지붕을 얹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공간 구조를 보면 농촌의 경우 전통적인 주거 형태인 마당과 안채, 축사, 헛간 등 부속사로 구성되어 있고, 안채는 마루와 방, 부엌 등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현대 주택은 외부 공간은 전통 주거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마당과 부속 건물로 이루어지지만 안채는 현관을 들어가면 거실이 나오고, 거실과 연결되어 방과 주방, 욕실 등이 위치하는 형태이다.
최근에 웰빙 생활과 로하스(LOHAS) 생활의 영향으로 황토 주택과 목조 주택, 한옥이 유행하기도 하는데, 건물의 기둥은 목재로 하고 벽체는 황토나 황토 벽돌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에는 기와를 올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건강에 좋은 전통 주거의 건축적 요소를 반영하고, 현대의 생활을 담는 주거 형태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