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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351
한자 城北-
영어음역 Seongbukgol
영어의미역 Seongbukgol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 성북골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면적 193.9㏊
총인구(남, 여) 136명
가구수 43가구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였던 성북골은 인근에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어 마을이 성의 북쪽에 해당하므로 오랜 동안 성북동(城北洞)이라 불리었다.

[형성 및 변천]

1524년(중종 19)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남원에서 옮겨와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로부터 약 40년 후에 김해김씨와 경주최씨 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번성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달성서씨 두 형제가 함양에서 피난을 오다가 숲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찾아가니 이 마을 터에 이미 김씨가 살고 있었다고도 한다.

[자연환경]

주산인 제비봉의 맥을 이어 서쪽으로 휘돌아 밀어 오른 봉우리에 성산 상여바위가 있고, 동쪽 까막재를 넘고 다시 마을 동편 개울을 넘어 서면 성산산성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인 팔량치(八良峙)를 굽어보고 있다.

성북골은 풍수지리적으로 제비집 모양의 연소형국(燕巢形局)이며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성북골의 터가 갈용음수혈(渴龍飮水穴)이라고도 한다.

[현황]

성북골인월면에서 국도 24호선을 따라 3㎞ 가량 경상남도 함양군 쪽으로 가다보면 함양군과의 경계에 팔량치가 있고, 이 팔량치에서 북쪽으로 200m가량 들어간 곳에 있다.

2007년 현재 면적은 193.9㏊이며 총 43세대에 13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호남과 영남의 경계 마을인 성북골은 해발 520m의 고랭지 지대이다. 주요 소득원은 쌀과 보리, 고랭지 채소이며 그 외에 곶감, 감식초, 잎담배가 생산되고 특산물로는 약초와 산나물 등이 있다.

성북골에 접한 팔량치는 해발 513m의 고개로서 영남과 호남의 관문인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팔량치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경남(趙慶男) 등 8명의 장군이 이 고개에서 용전 끝에 왜적을 섬멸한 공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비봉 아래에는 마을의 제를 지내는 산제비바웃골이 있고 성북골 윗뜸에는 ‘박첨지의 텃밭’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 터의 좌향을 보면 건좌손향(乾坐巽向) 즉, 기세가 웅장하고 천성(天星)은 대불상(大不祥)이라 용혈(龍穴)이 길하면 일발(一發)은 하나 이대(二代)를 못 넘긴다고 한다.

또한 그 텃밭에 사는 주인은 성질이 호리소의(好利小義)하고 조급할 뿐 아니라 오기가 많으며, 악사절멸(惡死絶滅)의 악질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놀부의 성격을 묘사한 것과 유사하다.

성북골은 “전라 경상 두얼품에 팔량재가 있었는디”로 시작되는 『흥부전(興夫傳)』의 발상지로 『흥부전』의 모태가 되는 형제애가 돈독한 「박첨지 이야기」가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대가 끈긴 박첨지 묘에서 매년 음력 3월 삼짇날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왔으나 현재는 흥부제가 열리는 음력 9월 9일에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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