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92 |
---|---|
영어음역 | Pallang Maeul |
영어의미역 | Pallang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내령리 |
집필자 | 서정섭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내령리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 지점에는 팔량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팔랑재와 팔량재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다른 지명이므로 구분해야 한다.
[명칭유래]
진한의 왕은 달궁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 밖의 영에 정 장군(정령치, 정령재)을, 동쪽 20리 밖의 영마루에 황 장군(황령치, 황령재)을, 남쪽 20리 밖의 산령에는 성이 각기 다른 3명의 장군(성삼재)을 배치하였다.
또한, 북쪽 30리 밖의 높은 산령에는 8명의 젊은 장군(팔랑치, 팔랑재)을 배치해 외적의 침공을 막아냈다고 하여 각각 정령재, 황령재, 성삼재, 팔랑재 등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으며, 팔랑마을은 팔랑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팔랑마을은 몇 가구만 거주하는 작은 자연 마을이므로 형성과 변천은 내령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595년경 김령김씨가 난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횡치(일명 비키재)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 1700년경 내령에는 최씨가, 외령에는 하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1800년경에는 화전민들이 팔랑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내령리 입구 약 300m 지점에는 산신바위라는 기암이 있는데, 산신령이 노는 곳이라 하여 영대라 칭하였으며 영대의 안쪽 마을을 안영대, 바깥 마을을 바깥영대라 하였다.
내령리는 본래 운봉의 산내면 지역으로 영대, 안영대 또는 내령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횡치, 외령, 팔랑이 병합되어 내령리에 편입되었다. 횡치는 1914년 이전에는 입석리에 속해 있었으나 워낙 산간 오지이므로 해가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어 현재는 단 2세대가 살고 있을 뿐이다.
1936년에는 마을 앞으로 군 도로인 달궁도로가 개설되었다. 1976년에는 하수구 설치를 하였으며, 화전 정리 사업으로 경사 40도 이상의 화전지가 정리되어 9호가 이주하였다.
외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리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사방이 첩첩산중인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으나 1987년에는 팔랑마을 진입로 2.1㎞를 확장, 개설하여 1990년대 3차례에 걸쳐 연차적으로 0.8㎞의 콘크리트 포장을 추진하여 교통이 다소 개선되었다.
팔랑마을 앞을 지방도 861호선이 지나가고, 만수천 계곡변과 내령 솔밭의 자연 발생 유원지를 중심으로 여름철에는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에 따라 1992년 이후 대형 숙박 시설 2개소를 건립하였으며, 1995년부터 금강콘도 부지 조성 사업을 시작으로 주민들은 지방도로 변에 상권을 형성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자연환경]
팔랑마을은 지리산 심산유곡의 해발 700m 지대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팔랑재가 있으며 바래봉으로 연결된다. 앞으로는 삼정산, 노고단 등 지리산 준령의 봉우리가 펼쳐져 있다.
[현황]
지리산 뱀사골 계곡 가는 길의 중간 부근에서 우측 팔랑재로 2㎞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팔랑마을의 농경지는 30~40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토질도 척박하여 지금은 모두 휴경지가 되었다.
바래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팔랑치를 지나가므로 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팔랑마을에서 철쭉 군락지인 팔랑치 간의 거리는 왕복 6㎞지만 좌우 정령치를 가는 세걸산 쪽과 바래봉을 다녀오려면 상당한 거리와 시간이 소요된다.
팔랑마을에서 팔랑치로 오르는 등산로는 철쭉 개화 기간인 매년 5월 31일까지만 한시적으로 개방하며 마을에서는 화전민이 살던 움집 등을 활용해 현재 별장과 근린생활 시설물로 이용하고 있다.
팔랑마을에서는 2~3월에는 고로쇠 수액, 4~5월에는 철쭉과 고사리·취나물·다래순 등의 산나물과 여름, 가을에는 단풍 관광 등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특산물로는 오미자, 송이, 곶감, 토종꿀, 표고버섯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