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6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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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保健醫療運動 |
영어공식명칭 | Healthcare Movement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금향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82년 - 한국YMCA전국연맹 의료 소비자 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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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시기/일시 | 1986년 4월 - 신천연합의원 설립 |
전개 시기/일시 | 1992년 - 신천연합의원에서 신천연합병원으로 승격 |
발생|시작 장소 | 신천연합의원 - 경기도 시흥시 복지로 57[대야동 469-3] |
성격 | 사회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양요환|안용태|고경심|제정구 |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서 보건 행정 및 보건 서비스를 받는 환자의 권리 보호 및 의료 소비자의 권리를 찾는 운동.
[개설]
보건 의료 운동은 환자의 권리 보호와 의료 서비스의 개선을 위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시흥 지역에서는 신천연합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히 추진되었다.
[역사적 배경]
보건 의료 운동의 시작은 1970년대 도시 지역 빈민 운동의 출발 또는 사회 민주화 운동에서 찾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소비자 운동을 중심으로 의료 사고에 대한 환자 상담과 피해 구조 활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한국YMCA전국연맹에서 1982년 의료 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과 소송을 도와주면서 의료 소비자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시흥 지역의 경우 보건 의료 운동은 빈민 운동과 함께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빈민 운동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제정구가 복음자리마을를 마련하면서 시흥시는 빈민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시흥 지역에 있었던 신천연합의원[지금의 신천연합병원]이 한국 보건 의료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기에 시흥시는 보건 의료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와 같이 시흥시는 우리나라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터전이었으며, 그 씨앗을 뿌리는 역할은 복음자리마을 주민과 신천연합의원이 수행하였다. 복음자리 빈민 운동은 지역 센터 중심의 지역 주민 운동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민주화가 성숙한 후에는 지역 복지 운동으로 변화하였다. 한편 신천연합의원은 민주화 운동 속에서 보건 의료 운동을 새롭게 개척하여 시흥 지역 단위의 보건 의료 운동을 전국적인 보건 의료 운동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경과]
신천연합의원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동아리인 사회의학연구회 출신인 의사 양요환, 안용태, 고경심이 1986년 4월 지역 의료 활동을 위해 만든 병원이다. 당시 양요한 원장은 질병을 한 개인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넘어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과 환경에서 질병이 생성되고 치유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이 뜻을 같이 한 후배들과 함께 신천연합의원을 설립하였다. 신천연합의원은 초기에 지역 의료 운동의 실천 대상으로 복음자리마을을 선정하여 복음신용협동조합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의료협동조합을 결성하였고, 철거 투쟁에서 다치거나 노동 현장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운동의 목적을 확대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1988년 인천의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1992년 93병상의 병원으로 승격한 신천연합병원은 보건 의료 운동 차원에서 지역 의료 체계의 확립을 주요 과제로 삼고, 지역의료센터와 지역정보보건센터를 만들었다. 또한 가정 간호 및 호스피스 사업을 개시하는 등 지역 의료 사업을 확대시켜 왔다.
[결과]
시흥시의 보건 의료 운동은 신천연합병원과 함께 성장 및 변화해 왔으며 지역 의료 체계를 확립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신천연합병원의 양요환 원장은 지역 의료 체계의 확립을 위해 다른 재단과 결합하여 녹향메디컬[지금의 녹향의원]이라는 노인 전문 병원을 또다시 설립하였다.
[의의와 평가]
보건 의료 운동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 놓인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를 위한 의료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시흥시의 경우 신천연합병원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지역 의료 체계를 확립하는 데 앞장섰던 운동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흥시의 보건 의료 운동은 우리나라 사회운동에서 환자의 권리 보호와 의료 서비스 분야를 처음으로 사회운동 차원으로 끌어올린 획기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