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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망루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428
한자 獨島望樓址
영어의미역 Dokdo Island Watchtower Plac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망루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1905년 7월 25일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지도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이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세운 망루 터.

[변천]

러일전쟁 초기에 일본 해군은 서해안에서는 기선을 잡았지만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함대에 의해 동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지 못하였다. 위기를 느낀 일본 해군은 모든 군함에 무선 전신을 설치하고, 러시아 함대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울진군 죽변에 망루를 설치하였다. 이후 추가로 울릉도 동북부와 서북부에 각각 망루를 설치하고, 죽변 망루와 울릉도 망루를 연결하는 해저 전선을 완공하였다.

이 시기 일본 해군은 한국 해안 전역에 20개의 망루를 설치하였다. 독도의 군사적 중요성에 주목한 일본 해군은 1904년 9월 일본 군함 신고호(新高號)를 타고 독도에 들어가 일본 해군의 망루를 설치하기 위한 예비 탐색전을 벌였다. 독도에 해군 망루를 설치하려는 공작은 일본 해군성과 외무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강치 사냥꾼 나카이에게 독도에서의 어업을 허락한 일본은 이를 빌미로 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망루 공사를 서둘렀다. 거센 해풍과 날씨 때문에 공사가 늦어지는 가운데 일본 해군은 1905년 동해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물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1905년 7월 22일 일본 해군성은 해군 인부 38명을 독도에 상륙시켜 7월 25일 독도 망루 공사를 개시하였다.

독도 망루에 배치된 인원은 요원 4명과 고용인 2명 등 모두 6명이었다. 그러나 9월에 러일전쟁이 종전되어 10월 15일에 철거를 결정하였다. 이후 독도 망루는 1906년 시마네현 지사의 주선으로 ‘죽도어렵합자회사’에 인계되었다.

[현황]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독도에 들어갔을 때 독도 정상에는 일본 해군이 설치한 망루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약 20여 평 가량의 땅이 평평하게 다져져 있었다. 독도의용수비대서도 물골에서 천막 생활을 하다가 1954년 8월에 막사를 짓고 독도 방위에 나섰다. 현재 이곳에는 독도 경비대 숙소가 있다. 의용 수비대의 증언에 따르면 공사때 망루 터에서 일본군이 사용하던 숯이 나와 땔감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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