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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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황방리 와 파주시, 연천군에 걸쳐 있는 산. 감악산(紺嶽山)은 매우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된다. 감악산의 ‘감’자를 ‘가미’의 음차로 보아 ‘감악’을 가미[神]의 산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멀리서 보면 감색이어서 감악산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여러 측면에서 보건대 감색이어서 감악산이라 했다는 말보다는 산신 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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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본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던 견주(見州)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대 내소군(來蘇郡)으로 편제되었다가 898년 전후에 견주로 불리게 되었다. 이때 왕건(王建)이 양주와 견주를 쳐서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고려 건국 후 견주는 개경 인근이자 양주 경계 내에 있던 곳으로, 정치·경제적인 중요성을 띤 행정 구역으로 편제되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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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1390년(공양왕 2) 7월 서운관에서 송도 개경의 지적을 쉬게 하고 국운을 일으키기 위해 『도선비기(道詵秘記)』를 따라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상서하였고, 한양 궁궐 수리 등 관련 조치들이 행하여졌다. 그중 한양부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재편이 이루어졌다. 도성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해당하였던 양주 일대는 경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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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이 포함된 고려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983년(고려 성종 2) 12목을 두었으며, 양주에는 양주목이 설치되었다. 993년 거란의 1차 침입이 있은 뒤인 995년(성종 14) 성종은 전쟁에 대비하고 지방 호족 세력의 통제와 중앙 집권의 강화를 위해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고자 했다. 개편 방향은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10도제와 절도사·도단련사·단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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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의 남쪽 한강 부근에 있었던 나루.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는 교통로 상의 강변 요충지에 진[혹은 관진(關津)·진관(津關)]이나 도(渡)·도진(渡津)을 설치하여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검색하거나, 여기에 배치된 관선(官船)인 진도선(津渡船)[나룻배]를 이용하여 국가의 명령 전달이나 사람과 물자 수송 등 교통과 통신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유명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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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삼경(三京) 중,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행정 구역. 경기도 양주는 한강과 삼각산 등을 끼고 있어 지리적·경제적·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었고, 교통 및 무역로가 발달해 있었다. 이런 연유로 1067년(문종 21)에 양주를 남경(南京)으로 승격시켰다. 이로서 양주는 서경[평양]·동경[경주]과 함께 삼경의 하나가 되었다. 양주 지역은 원래 양주목에서 지주사(知州事)로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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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일대에 있던 고구려의 성이자 행정 구역. 백제 근초고왕 이전 시기 고구려는 경기도 양주시를 포함하는 한강 유역에 진출하기 위해 남평양성을 두었다. 그러나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공략하면서 북한산 일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으며, 남평양성은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370년(근초고왕 25) 백제가 한성을 공략하면서 별도(別都)로서 남평양성을 두었다. 진흥왕대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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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군. 757년(경덕왕 16) 12월 신라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고 지방 행정을 9주 5소경으로 재편하였다. 759년에는 관제 역시 중국식으로 개혁하였다. 757년 고구려 지배하에 있던 한산주(漢山州)를 한주(漢州)로 고치면서 1주, 1소경, 27군, 46현을 거느리게 하였다. 내소군(來蘇郡)은 이 가운데 하나로 고구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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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현재의 동두천시 지역에 있던 고구려의 현. 475년(장수왕 63) 고구려의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추진한 결과 백제 도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후 고구려는 한강 유역과 양주 일대에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고, 양주를 그 치소로 삼았다. 내을매현(內乙買縣)은 이때 설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 견성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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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려와 조선 시대 주요 도로에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되어 교통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불렀다. 노원역은 청파역과 함께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함경도 지방을 연결하는 첫 번째 역으로 청파역과 함께 병조에서 관리하였다. 노원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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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던 신라 시대의 치소성. 신라 때 새로 정복한 한강 유역 일대 중 양주 지역에 설치한 매초성은 매소천성이라고도 불리며 매성현(買省縣)의 치소성(治所城)이라 여겨진다. 매초성은 『고려사(高麗史)』 태조 8년 9월 조에 매조성장군(買曹城將軍) 능현(能玄)이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해 왔다는 기록으로 보건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조성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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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수석동에 있던 나루. 진(津)[나루]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주요 수상 교통로에 설치한 교통·통신 기관의 하나로서, 강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를 통제·관리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미호진(渼湖津)은 현재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를 지나 팔당과 미사리를 거쳐 왕숙천(王宿川)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인 강동대교 직전에 있었다. 미호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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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현. 사천현(沙川縣)은 양주시 은현면과 동두천시 일대에 있던 현으로, 본래 내을매현(內乙買縣), 즉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한자로 다시 바꾼 명칭이다. 757년(경덕왕 16)에 군현 제도와 관련,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지방 행정 조직을 기본적으로 9주 5소경 체제하에 재편한 것이다. 이때 양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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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를 포함한 지역을 관할하던 고려 전기의 관직. 안무사(安撫使)는 고려 전기 1010년(현종 1)과 1011년(현종 2)에 걸친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직후인 1012년에 지방 행정 제도 개편을 통해 내정을 다지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1012(현종 3)~1018년(현종 9)에 파견된 안무사의 직무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절도사제를 폐지하고 둔 것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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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고려 후기 지방 행정 제도. 원의 지배하에 지방 행정 구역의 편제를 변경함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양광도는 1314년(충숙왕 1)에 정식 명칭이 되었다. 지금의 양주시 일대는 양광도 관할인 남경유수관 양주에 속한 3군 6현에 포함되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10 지리 양광도]를 살펴보면 “양광도(楊廣道)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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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설치한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 대에 한강 주변 지역을 한산군으로 편제하여 다스렸는데, 양주(楊州) 지역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898년 왕건(王建)에 의해 양주와 견주(見州)가 정벌되면서 궁예(弓裔)의 세력 아래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 건국 이후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 해당하는 양주는 요충지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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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다. 역은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외교 사행의 영송(迎送), 군사의 왕래 등 국가의 공적 행위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는 교통·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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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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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영서역(迎曙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개경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양주 치소에서 서쪽 60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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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묵은면(默隱面)과 현내면(縣內面)의 대부분 지역을 합치면서, 묵은면의 ‘은’자와 현내면의 ‘현’자를 따서 은현면(隱縣面)이라고 하였다. 은현면이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묵은면과 현내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은현면은 삼국 시대부터 별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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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과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및 조선 시대의 현. 임진강을 끼고 있어 교통상, 군사상의 요지였던 경기도 양주 지역에는 삼국 시대 때부터 토탄성(吐呑城)·아미성(峨嵋城)·육계성(六溪城)·수철성(水鐵城) 등의 많은 성이 있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요지로 인식되었고, 고려 시대에 들어 성이 많다 하여 ‘적성(積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주로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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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절도사(節度使) 소속의 군대. 고려는 983년(성종 2)에 12목을 두었는데, 현 양주시는 당시 최고 행정 단위의 하나인 양주목에 속하였다. 고려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을 당한 후 995년(성종 14)에 전쟁에 대비하고 지방 호족 세력 통제와 중앙 집권을 위해 절도사 체제로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였다. 『고려사』[권56, 지10 지리 양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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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기도 양주와 황해도 해주에 설치된 절도사(節度使) 소속의 군대. 고려는 983년(성종 2)에 12목을 두었는데, 현 양주시는 당시 최고 행정 단위의 하나인 양주목에 속하였다. 그러나 993년 거란의 1차 침입을 당한 후 전쟁에 대비하고 지방 호족 세력 통제와 중앙 집권을 위해 절도사 체제로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였다. 『고려사』[권56, 지10 지리 양광도 남경유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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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檜巖寺)에 있는 고려 후기 지공선사(指空禪師) 부도(浮屠)와 석등(石燈). 부도는 이름 높은 승려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된 묘탑(廟塔)인데 흔히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 신라 하대에 선종(禪宗)이 도입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지공선사는 인도 출신의 승려로, 중국의 여러 지방을 순례하고 고려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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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김포·부평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숭례문[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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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적성[지금의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있던 삼국 시대 산성이자 행정 구역. 칠중성(七重城)은 돌을 이용해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길이는 600m 정도 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했을 당시에는 이곳을 난은별(難隱別)이라 했으며, 475년(장수왕 63) 남진 정책의 성공으로 고구려가 한강 유역 일대의 지배권을 확립한 때에는 낭비성(娘臂城)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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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마을에 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평구역(平丘驛)은 고려 시대에는 남경[양주]에서 평창이나 봉화 방면으로 갈 수 있는 평구도(平丘道)의 중심 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찰방(察訪)[종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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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를 포함한 한강 유역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구려와 신라의 군. 고구려는 장수왕의 남진 이래 한강 유역을 다시 개척하면서 양주를 포함한 지역에 한산군(漢山郡)을 두어 관할토록 하였다. 그런데 551년 신라와 백제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이 지역은 신라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후에 북한산주, 다시 한산주로 바뀌었다가 755년(경덕왕 14)에는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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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고려 후기의 행정 구역. 1308년(충렬왕 34) 심양왕(瀋陽王)이었던 충선왕이 중앙과 지방 제도 및 관제 개편 등을 단행하면서 양주에 한양부를 설치하였다. 이는 충선왕 자신의 왕권 강화 및 원의 체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진행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많은 부윤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의 독자성을 견제하고자 시도하였다. 『고려사(高麗史)』[권77, 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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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존재한 지방 세력. 호족(豪族)은 통일 신라 말기의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여 지방 사회에서 지역에 대한 일정한 행정적·경제적·군사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던 독자적인 지방 세력으로 사회 변동을 주도한 지배 세력이었다. 호족은 대체로 낙향한 귀족 세력, 지방의 군진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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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암동(檜岩洞)의 옛 이름인 회암리의 땅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옛 회암면 지역에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회암골·회암동·회암으로 불렸다는 설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문헌에 따르면 ‘회암’이라는 땅 이름은 회암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회암사의 창건 시기가 분명하지 않아 연대를 확정하기 힘들다. 다만 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