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고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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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경주 정씨 집성촌. 경주 정씨의 시조는 삼한 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의 여섯 촌장 중 한 명으로 신라 건국에 공을 세운 지백호(智伯虎)란 인물이다. 신라가 건국되자 건국 좌명공신이 되었고, 유리왕 때에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받았다. 후손은 연일(延日)·동래(東萊)·온양(溫陽)·초계(草溪)·하동(河東)·진양(晉陽)·진주(晉州) 등 120여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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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2004년 (사)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시행하였다. 이는 양주시 고읍동 택지 개발 및 도로 공사를 위해 시행한 것으로, 현재 현대아파트 동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 지구 북사면을 조사하였다. 조사 당시 계단식 밭이었던 이 일대가 유물 산포지임을 확인하였다. 결과 보고는 『고읍IC~고읍지구 외곽도로 확·포장공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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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는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추정 관아 터. 고읍동 추정 관아 터는 그 유적과 유물 등으로 볼 때 관아가 있던 곳으로 여겨지지만 그 규모 등은 알 수 없다. 1397년(태조 6) 양주부(楊州府)의 치소(治所)가 동촌(東村) 대동리(大東里)[현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일대]에서 양주시 고읍동으로 옮겨져 1506년(중종 1) 다시 유양동으로 옮겨지기까지 관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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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397년(태조 6) 수도 한양이 만들어지면서 원래 한양[옛 명칭 양주]에 살던 사람들을 동촌 대동리로 이주시켰다가, 다시 대동리에서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견주의 읍치로 이전되면서 주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연산군 때 양주목이 폐치되었다가 1506년(중종 1) 양주목의 읍치가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으로 이전되면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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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있던 신라 시대의 치소성. 신라 때 새로 정복한 한강 유역 일대 중 양주 지역에 설치한 매초성은 매소천성이라고도 불리며 매성현(買省縣)의 치소성(治所城)이라 여겨진다. 매초성은 『고려사(高麗史)』 태조 8년 9월 조에 매조성장군(買曹城將軍) 능현(能玄)이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해 왔다는 기록으로 보건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조성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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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 활동을 하는 단체·시설·인물. 양주는 서울과 인접한데다가 6·25 전쟁 당시 폐허가 되어 상대적으로 미술 공부를 했던 인물은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다 할 미술가를 배출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03년에 양주가 시로 승격하고 또한 전철 개통으로 서울과의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외부에서 미술을 전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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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397년(태조 6) 양주부(楊州府)의 치소를 동촌(東村) 대동리(大洞里)에서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고려시대 견주(見州)의 옛터]로 옮기면서 주내(州內)라 불리게 되었다. 1506년(중종 1) 읍치를 다시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으로 이전하면서 주내는 조선 전기 양주목의 읍치가 있었다는 뜻에서 고주내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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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의 북편에 위치한 경기도 양주시는 광주산맥의 끝단으로서 남쪽으로 서울과 양주시·의정부시를 가르는 도봉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높고 낮은 산들이 고루 흩어져 있다. 한마디로 양주시는 거의 대부분이 산지 지형이며 여러 산들 사이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양주시 중심가이다. 임진강을 끼고 있는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전곡읍을 북쪽에 접하고 있으면서, 양주시의 최북단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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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양주시에는 유명한 산들이 많다. 더구나 양주시는 서울을 비롯하여 파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의정부시, 고양시 등과 인접해 있어서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양주시 일대의 산들을 즐겨 찾고 있다. 양주시에 있는 산들의 공통점은 높거나 험하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등산객들이 등반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물론 불곡산과 감악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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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교리에 따른 예식이 행해지는 건물. 성당(聖堂)은 본당을 말하며, 가톨릭의 경신례를 위해 모든 신자들이 이용하도록 지정된 거룩한 건물이다. 성당은 주임 신부가 상주하며, 공소(公所)는 신부가 방문해야만 미사가 집전될 수 있는 성당보다는 작은 교회의 단위이다. 주교 관구의 중심 교회로서 주교가 직위에 있고 미사를 집전하는 경우 주교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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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으로서, 고려 시대에는 개성과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방에 속함으로써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부침 속에는 역사에 오롯이 이름 한 줄로 남았거나 혹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이 녹아 있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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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6년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지방 행정 제도에 의해 설정된 목(牧)·부(府)·군(郡)·현(縣) 중에서 양주는 가장 큰 규모의 행정 단위인 목에 해당하였으며, 해당 지방관의 명칭은 목사(牧使)였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던 양주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1466년(세조 12) 양주도호부를 양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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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부터 141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도읍을 한양, 즉 예전의 양주로 옮기면서 옛 양주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동촌(東村) 대동리(大洞里)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양주를 양주군(楊州郡)으로 강등시켰다. 1395년(태조 4) 고려 시대 견주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이주시킨 후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양주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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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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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유아 교육 담당 기관. 유치원은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목적으로 알맞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여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 연령의 유아를 교육하는 기관이다. 양주시에는 1981년 3월 1일 상패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처음으로 개설된 이후부터 2011년 4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두 28개 공립 병설 유치원이 개원 운영되고 있다. 한편 2010년 3월 1일에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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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시대 양주(楊州)는 원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1392년 새롭게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후기까지 양주로 불리던 한강 북부의 한양부가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수도로 선정하였으며, 기존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見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