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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287
한자 石隅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도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양주군 광적면 석우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03년 10월 19일연표보기 - 양주군 광적면 석우리에서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로 개편
법정리 석우리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가구수 1,089가구
인구(남,여) 2,475명[남자 1,333명, 여자 1,142명]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석우리(石隅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우리에 흐르는 하천인 석우천의 모퉁이에 있던 돌문에서 ‘돌모루 또는 ‘석우’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땅 이름 유래와 관련된 돌문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와 시주를 청하였으나 동네 사람들이 ‘쇠똥도 없다’고 하며 내쫓았다고 한다. 이에 스님이 괘씸하게 여겨 “좋은 동네인데 아쉽다. 저 돌문만 없으면 좋을 텐데.”라고 하니, 동네 사람들이 돌문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가납리에 다리를 설치하는데 이 돌문을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석우’라는 이름이 나오는 전국 대부분 지역의 유래를 확인해 보면, 대개 개울이 돌아 나가는 모퉁이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돌아 나가는 모퉁이’가 변하여 ‘돌모루’, 즉 ‘석우’로 쓰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곳 석우리석우천이라는 개울이 마을을 돌아나가고 있어 그런 의미로 쓰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한편 이 마을은 상수리의 마적 떼가 침범해 도적질을 할 정도로 부촌이었다고 전해진다.

[형성 및 변천]

석우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석적면 삼패하리·이패하리·삼패상리 일부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석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대부분 평야 지대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석우천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신천석우리에서 만난다.

[현황]

석우리양주시 광적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현재 총 1,089가구에 2,475명[남자 1,333명, 여자 1,14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석우1리와 석우2리의 2개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귀신골·끝돌모루·돌모루·박다리·밤가시·벌말·섬말[도촌(島村)]·송촌말[송촌동(松村洞)]·신사래(紳士來)·윗말·풀무골[야동(冶洞)] 등이 있다. 현재 석우리석우천신천 주변에 있는 농지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얕은 구릉지 주변으로 약간의 공장 지대가 조성되어 있다. 한편 석우리필룩스조명박물관이 있어 조명의 역사를 배우고 아름다운 조명 작품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동쪽은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서쪽은 우고리, 남쪽은 광석리, 북쪽은 덕도리와 접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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