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620
한자 南乙珍 墓 - 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24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도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841년 7월연표보기 - 신도비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4월 15일연표보기 - 남을진 묘 및 신도비 양주시 향토 유적 제2호로 지정
현 소재지 남을진 묘 및 신도비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24[좌표: N37° 54′ 01.1594″, E127° 00′ 52.7617″]지도보기
성격 능묘|묘|신도비
양식 단분 합장
관련 인물 남을진(南乙珍)
문화재 지정 번호 양주시 향토 유적 제2호

[정의]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충신 남을진(南乙珍)의 묘와 신도비.

[개설]

조선 시대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감악산 남선굴에 은닉하면서 삶을 마감한 남을진의 묘와 신도비이다. 남을진의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아버지는 남천로(南天路)이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1368년(공민왕 17) 현량과에 급제하였고, 고려 말에 정치가 문란해지자 양주 사천현(沙川縣) 봉황산에 은거하였다. 조선 개국 후 태조가 사천백에 봉하였으나 신하된 자로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감악산 석굴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위치]

남을진 묘 및 신도비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서원말에서 하패리로 넘어가는 지방도 375호선 도로변에 있는 비석골에 위치한다. 비석골이라는 지명은 남을진 묘 및 신도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태]

묘는 단분 합장(單墳合葬)이고, 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문인석(文人石) 등의 옛 석물을 갖추었다. 좌향은 서남향이다. 문인석은 복두 공복(幞頭公服)을 착용하였으며, 총 높이는 176㎝이다. 신도비는 남을진의 묘소 아래에 자리하고 있으며, 팔작지붕 옥개형의 2면 비이다. 규모는 옥개석이 너비 97㎝, 두께 73㎝, 높이 45㎝이고, 비석이 너비 71㎝, 두께 16㎝, 높이 151㎝이다. 비석 받침대는 너비 122㎝, 두께 77㎝, 높이 55㎝이다.

[금석문]

신도비의 전액은 ‘고려 참지 문하부사 남공 신도비명(高麗叅知門下府事南公神道碑銘)’이고, 제목은 ‘고려 정헌대부 참지 문하부사 겸 판전의감사 의령 남공 신도비명 병서(高麗靖憲大夫叅知門下府事兼判典醫監司宜寧南公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은 우의정 조인영(趙寅永)[1782~1850]이 지었고, 부승지 송상래(宋祥來)가 전액과 함께 썼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숭정 기원후 네 번째 신축년, 즉 1841년(헌종 7) 7월이다.

[현황]

남을진 묘 및 신도비는 1986년 4월 15일 양주시 향토 유적 제2호로 지정되었다. 신도비는 남을진 묘역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구릉 끝 부분에 서쪽을 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1784년(정조 8) 고려의 충신 남을진을 배향한 사우인 정절사(旌節祠)에 사액을 내리면서 세워졌으며, 현재의 비는 1997년 5월에 복원한 것이다. 비의 전면에는 ‘대소인하마(大小人下馬)’라고 새겨져 있다. 비석의 너비는 37㎝, 두께는 15㎝, 높이는 83㎝이다. 묘소의 좌측에는 재실인 충공재(忠恭齋)가 자리하고 있으며, 묘소 뒤편에 새로 복원된 정절사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말 조선 초 불사이군(不事二君)의 표상으로 충성을 바친 남을진의 묘와 신도비를 통해 나라 사랑의 정신을 되새김질할 수 있으며, 부근의 사천서원 즉 정절사와 함께 남을진 묘 및 신도비는 양주를 대표하는 역사 유적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