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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633
한자 趙英茂 別廟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산25-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조영무 별묘 현 위치로 이전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조영무 별묘 곡장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조영무 별묘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4월 15일연표보기 - 조영무 별묘 양주시 향토 유적 제12호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조영무 별묘 시조단 조성
현 소재지 조영무 별묘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산25-1지도보기
성격 사당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한양 조씨 문중
관리자 한양 조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양주시 향토 유적 제12호

[정의]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공신인 조영무(趙英茂)의 사당.

[개설]

조영무[1338~1414]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국에서 귀화한 조지수(趙之壽)의 고손이다. 조선 건국 후 개국공신 3등에 올랐고, 한산군(漢山君)에 봉해졌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으로 정해지고,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에도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로로 조영무태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고, 죽은 뒤에는 태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광동리 광복동에 묘소와 신도비, 재실 등이 있다.

[위치]

조영무 별묘(趙英茂別廟)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산25-1번지 연곡리 마을 우측의 나지막한 야산인 지령산 기슭에 위치한다.

[변천]

1868년(고종 5)까지만 해도 조영무 별묘는 현 위치에서 약 150m 서북쪽으로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이후 퇴락이 심해지자 1914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고, 1949년에는 곡장(曲墻)[무덤 주위에 쌓은 나지막한 담]을 보수하고, 1973년에는 별묘를 중수하였다.

[형태]

주 건물로 삼문(三門)과 본당인 사우(祠宇)가 있다. 삼문 중 중문에는 ‘휴암묘(休岩墓)’라는 현액이 걸려 있다. 사당은 정면 6.9m, 측면 3.7m의 맞배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얹은 홑처마에 병풍판이 달려 있다. 이외에 조영무 별묘 옆에는 1990년 후손들이 뜻을 모아 제단(祭壇)을 쌓고 세운 시조 조지수의 시조단비(始祖壇碑)가 있다. 시조의 단소(壇所) 앞에는 2대조 조인재(趙麟才), 3대조 조순후(趙珣厚), 4대조 한산백공(漢山伯公) 조세진(趙世珍)의 단비(壇碑)가 나란히 서 있다. 단비명(壇碑銘)은 성균관부관장 고부(古阜) 이수원(李壽源)이 짓고, 한국서예협회 학술이사 양택동(梁澤東)이 썼다.

[현황]

1986년 4월 15일 양주시 향토 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한양 조씨(漢陽趙氏) 문중이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사당 안에는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해마다 10월 초하루에 한양 조씨 대종회에서 향화(香火)를 올리고 있다. 사우 상단 벽에는 김영한·최종건이 쓴 ‘한산부원군 충무 조공 영당기(漢山府院君忠武趙公影堂記)’를 비롯해 3개의 현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영무 별묘는 조선 건국 공신이자 태조의 등극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조영무를 위한 사당이다. 시조인 조지수와 바로 위 선대의 비석까지 함께 있어 양주 시민에게 지역의 역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