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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896
한자 李時善
이칭/별칭 자수(子修),송월재(松月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5년연표보기 - 이시선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15년연표보기 - 이시선 사망
거주|이주지 안동 -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묘소|단소 이시선 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암각 글씨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노고산 독재동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전주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암각 글씨가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자수(子修), 호는 송월재(松月齋). 태종의 서자(庶子)인 온녕군(溫寧君) 이정(李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영기(李英基)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벌(權橃)의 증손녀이다. 부인은 상주의 유학자 이전(李㙉)의 손녀이다. 자녀는 3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근(李瑾), 이해(李瑎), 이영(李玲)이고, 딸은 정로(鄭輅), 권진열(權震說), 권영수(權永秀), 정석기(鄭碩耆)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활동 사항]

이시선(李時善)[1625~1715]은 안동부 춘양현 유곡[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에서 태어났다. 왕손으로서 대대로 한양에 살았으나 아버지 이영기가 임진왜란 직후 정치적 혼란을 피해 처가가 있는 안동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이시선에 대한 이야기는 정조 때 임금의 명으로 채홍원(蔡弘遠) 등이 편찬한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에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다.

이시선은 유곡에서 나고 자라 젊어서 과거 준비를 하였으나 “진흙 수렁에서 명리 다툼을 하는 벼슬길은 장부가 갈 길이 아니다.”라고 말한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를 접고 전국 유람에 나섰다. 금강산, 속리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과 역사 속의 영웅들이 활동하였던 평양, 경주, 개성 등 옛 도읍지를 돌아보았다.

유람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송월재(松月齋)라는 서재를 지어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학문을 닦았다. 어려운 글을 읽을 때는 빈 바가지를 옆에 놓고 팥알을 하나씩 던져 넣으면서 이해가 될 때가지 읽기를 거듭하였다. 그 결과 유학은 물론이고 천문, 지리, 병법 등 다방면에 깊은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시선의 높은 인격과 학식이 한양에까지 알려져 80세에 호군(護軍) 벼슬을 받았으며, 91세까지 정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이시선의 시문을 모은 『송월재집(松月齋集)』, 『하화편(荷華編)』 외에 『사보략(史補略)』, 『역대사선(歷代史選)』, 『경서훈해(經書訓解)』, 『칠원구의(漆園口義)』, 『사선(史選)』, 『서전삼평(書傳參評)』, 『시전람과(詩傳濫課)』 등이 있다. 한편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노고산 독재동 계곡의 바위에 이시선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독재동(篤才洞)’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건지산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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