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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898
이칭/별칭 임거정(林巨正),임거질정(林居叱正)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도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59년연표보기 - 의적 활동
활동 시기/일시 1560년연표보기 - 황해도 봉산·경기도 개성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진출
활동 시기/일시 1561년연표보기 - 관군의 토벌로 형인 가도치가 체포됨
몰년 시기/일시 1562년연표보기 - 임꺽정 사망
출생지 경기도 양주시
활동지 황해도
활동지 평안도
활동지 경기도
활동지 강원도
성격 의적
성별

[정의]

조선 전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적.

[활동 사항]

임꺽정[?~1562]은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 후 황해도에서 생활하였던 임꺽정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의 농민 수십 명과 가족처럼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 구월산 일대의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도적 활동을 하였다. 1559년경부터 양반과 토호들의 재물을 빼앗는 것은 물론 관군의 방비와 토벌대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력을 확장하면서, 황해도·경기도·평안도의 관청을 습격하여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어 의적으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위기감을 느낀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 관군을 동원하여 진압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1559년에는 개성부 포도관 이억근(李億根) 마저 잡아 죽였다.

1560년 가을부터는 황해도 봉산·경기도 개성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진출했으나, 같은 해 11월 참모인 서림(徐林)이 체포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1561년에 황해도, 경기도 북부, 평안도,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어져 형인 가도치(加都致)가 체포되는 등 세력이 점차 위축되었으며, 명종이 파견한 토포사 남치근(南致勤)이 이끄는 관군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마침내 1562년 1월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당해, 15일 만에 죽음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0년 양주군양주문화원 주관으로 임꺽정의 생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유양동 일대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어, 학술 대회까지 개최하였다. 그 후 양주시 유양동 임꺽정 생가 터로 추정되는 곳에 임꺽정 생가 보존비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명종실록』에 명종 때 농민의 저항에 대해 당시의 사관이 “도적이 되는 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사회 경제적 모순이 격화됨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도적 떼가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났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임꺽정 집단의 활동은 정부·지배층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농민들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어 지배층은 그를 흉악무도한 도적이라고 했고, 백성들은 의적으로 영웅시했다. 그 뒤 임꺽정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그의 행적이 소설로 그려지기도 했다.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임꺽정』이 가장 유명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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