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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300
한자 維楊洞
이칭/별칭 유양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도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00년 10월 1일연표보기 -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에서 양주군 양주읍 유양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03년 10월 19일연표보기 - 양주군 양주읍 유양리에서 양주시 양주1동 관할의 유양동으로 개편
법정동 유양동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지도보기
성격 법정동
가구수 475가구
인구(남,여) 1,000명[남자 533명, 여자 467명]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유양동(維楊洞)의 옛 이름은 유양리이다. 땅 이름 유래에 여러 설이 있다. 첫째, 양주에서 제일인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둘째, 조선 초기 이 마을 출신 인물이 사신으로 가서 중국의 유양리에 들렀는데 그곳이 흡사 고향과 비슷하다고 느껴서 자신의 고향을 유양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1922년까지는 이곳에 군청이 있어서 구읍(舊邑)으로도 불렸다.

[형성 및 변천]

유양동은 조선 시대 및 현대 양주시의 중심지이다. 1506년(중종 1)부터 1922년 양주군청이 의정부로 옮겨가기 전까지 양주의 치소(治所)가 이곳에 위치하였으며, 양주향교, 객사 등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었다. 양주군청이 1922년 의정부로 이전되면서 군 청사는 주내면사무소로도 운영되었으나, 주내면사무소도 1955년에 현재 남방동에 있는 양주1동 주민자치센터 자리로 이전[바로 앞에 경원선 전철 양주역이 있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주시청 신청사는 의정부로 옮겨가기 전 원래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조금 벗어난 국도 3호선 평화로[남방동]로 2000년 10월 이전되었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유양동은 대개 부군리·홍문리·중리·향교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대한 제국시기에는 서부리 및 동부리로 불렸다. 양주관아를 중심으로 서쪽은 서부리, 동쪽은 동부리로 명명되었으며 그 일부가 오늘날의 유양동을 구성하고 있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읍내면 서부리 전부와 동부리·남방리 일부가 유양리라는 행정 구역으로 편성되었다. 2000년 10월 1일 주내면양주읍으로 승격되면서 양주읍 유양리가 되었다가,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양주1동 관할의 유양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북쪽에 양주의 진산인 불곡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남쪽에 평야 지대가 있다. 마을의 중심으로 유양천이 흐르고 있다.

[현황]

유양동은 양주시 양주1동의 서쪽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475가구에 1,000명[남자 533명, 여자 4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유양1통과 유양2통의 2개 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객사터[객사말, 객문동(客門洞)]·동부(東部)·막은골·모퉁이말[모툇마을]·사직골·선유동(仙遊洞)[선동(仙洞)]·원골[원곡(員谷)]·원모루[원우동(院隅洞)]·이촌마을[李村-]·지장개골·핑구말·하마청거리·향교말[생깆굴]·홍문거리 등이 있다.

현재 유양동은 옛 관아터를 중심으로 양주향교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2호인 어사대 비(御射臺碑) 등 많은 역사 유적이 있다. 양주를 대표하는 국가 무형 문화재 제2호인 양주별산대놀이와 관련된 양주별산대놀이전수회관 및 양주별산대놀이마당이 관아터 인근에 조성되어, 정기 공연과 상설 공연이 열리고 있다. 동쪽은 양주시 양주1동의 남방동, 서쪽은 백석읍 방성리, 남쪽은 양주1동의 어둔동, 북쪽은 불곡산을 경계로 양주1동의 산북동과 접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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