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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925
한자 南相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4년 2월 15일연표보기 - 남상갑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항일결사단체 흑백당 당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동지들이 만주로 갈 때 국내에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4년 1일 - 서울에서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44년 12월연표보기 - 5년형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연표보기 - 광복으로 출옥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경기도 양주
학교|수학지 중앙중학교 - 서울시 종로구 계동 1
학교|수학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5가 84-11
활동지 서울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남상갑(南相甲)[1924~미상]은 경기도 양주(楊洲)에서 태어났다. 남상갑은 1939년부터 이현상(李賢相)과 동지가 되어 조국 광복을 위하여 친일파 및 일본인 고관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1941년 이현상이 경복중학교 출신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 학생 결사 단체인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고 중앙중학교, 경성사범학교 학생 등을 대상으로 조직을 확장하자, 남상갑은 중앙중학교 졸업생 자격으로 흑백당의 당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남상갑은 그 후 목적 완수를 위해 계획을 진행하다가 194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동지들도 각각 전문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이들은 같은 해 가을 당시 봉래동[현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에 있던 주낙원(朱樂元)의 집에 모여 정식으로 흑백당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기본 강령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 절대 비밀, 책임 완수 등을 정하였다. 남상갑은 자금책 관련 임무를 맡았다.

흑백당의 활동은 우선 실천 행동 방략으로써 친일파 처단 명부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일인이 밀집하여 살고 있는 당시 욱정(旭町)[현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 부근] 일대를 방화하여 일인을 섬멸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와 병행하여 특공대를 조직하여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교련용 38식 소총 두 자루와 실탄 및 총검을 빼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1943년 10월에 흑백당의 동조자였던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창흠(金昌欽)이 체포되고 가택 수색을 당하면서 흑백당의 조직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당원들은 긴급 모임을 가진 후 중국으로 건너가 광복군에 투신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남상갑은 국내에 남아서 활동을 계속하다가 1944년 1월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남상갑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1944년 12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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