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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966
한자 任鳳淳
이칭/별칭 추정(秋汀)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7월 29일연표보기 - 임봉순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서울 봉명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과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과 퇴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연표보기 - 『혁신공보』 발행
활동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서울청년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3년 3월연표보기 - 청년당사 집행위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3년 7월연표보기 - 고려공산청년동맹 서울파 중앙위원회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23년 8월연표보기 - 신흥청년동맹 발기준비위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3년 10월연표보기 - 불온 문서 배포 혐의로 검거
활동 시기/일시 1924년 3월연표보기 - 조선청년총동맹 창립준비위원회 선전부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4년 10월연표보기 - 고려공산동맹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4년 12월연표보기 - 사회주의자동맹을 결성하여 집행위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7년 5월연표보기 - 조선사회단체 중앙협의회 창립 대회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5년 9월연표보기 - 한국민주당 발기인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66년 8월 1일연표보기 - 임봉순 사망
출생지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
학교|수학지 봉명학교 -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중앙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와세다대학 - 일본
묘소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선운수주식회사 사장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호는 추정(秋汀). 부인은 본관이 제안(濟安). 호는 추계(秋溪). 황석청(黃錫淸)의 딸로, 경성가정여숙(京城家庭女塾)[현 중앙여자중학교·중앙여자고등학교]을 설립한 황신덕(黃信德)[1898~1984]이다. 황신덕은 1962년 문화 훈장 대통령장을 수훈하였다. 자녀는 1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임봉순(任鳳淳)[1897~1966]은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에서 태어났다. 임봉순의 출생 연도에 대하여 다른 기록에는 모두 1900년생으로 나와 있으나, 양주시 회암동에 위치한 임봉순의 묘비에는 1897년(고종 34) 7월 29일로 표기되어 있다.

임봉순은 1914년 서울 봉명학교(鳳明學校)를 마치고, 1919년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박문호(朴文浩), 김상옥(金相玉), 유기원(柳基元) 등과 함께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하여 독립 사상을 고취하였다. 이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가 1920년 일본 동경으로 넘어가 1921년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인 1922년에 퇴학당하였다.

임봉순은 1922년 귀국하여 서울청년회에 가입하였으며, 1923년 3월 청년당사(靑年黨社) 집행위원이 되어 각 지역의 청년회에서 강연하였다. 동년 7월에는 고려공산청년동맹 서울파중앙위원회 결성에 참여하고 위원이 되었으며, 8월 북성회 회원으로서 신흥청년동맹 발기준비위원을 맡았다. 동년 10월에는 국제 청년 데이를 기념하여 불온 문서를 배포한 혐의로 검거되기도 하였다.

1924년 3월 조선청년총동맹 창립준비위원회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4월 청년총동맹 지방 순회반 경상북도 지역 책임을 맡았다. 동년 10월 고려공산동맹에 가입하였고, 12월에는 사회주의자동맹을 결성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1월 전 조선 노동자 교육 대회 준비위원을 맡았고, 같은 해 10월 전진회를 발기하고 창립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2월 사회 운동 전반에 관한 이론 및 정책을 수립하고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 등 각 부문별로 민족 해방 운동의 상호 연계 및 조직의 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사회단체 중앙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이 조선사회단체 중앙협의회에는 모두 874개 단체가 가입하였고, 총 회원은 32만여 명이었다. 이후 1927년 5월 조선사회단체 중앙협의회 창립 대회에 참여하였다. 이때 임봉순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1928년 8월 전라남도 무안군 하의도(荷衣島)[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방면의 답사기를 연재하였고, 1931년 2월에는 정평농민조합 탄압 사건을 보도하였다.

해방 후인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발기인이 되었으며, 부인 황신덕과 추계학원(秋溪學園)을 설립하여 현 중앙여자중학교·중앙여자고등학교[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소재]를 경영하였다. 1954년에는 조선운수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66년 8월 1일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 동쪽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양주 회암사지 바로 옆에 있었으나, 양주 회암사지 발굴 과정에서 보다 북쪽의 산자락으로 이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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