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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435
한자 儀禮服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양주시
집필자 최미선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통 의례를 거행할 때 특별히 갖추어 입었던 예복.

[개설]

의례복은 주로 통과의례(通過儀禮)를 행할 때 입는 옷을 말한다. 사람들은 일생을 통하여 사회적인 지위와 인정을 받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단계들이 있고, 이때는 반드시 특별한 의례를 행하게 되는데 이를 통과의례라고 하며 이때는 평상시 입던 옷이 아닌 특별한 옷을 입는데, 이를 의례복이라고 한다.

통과의례의 종류와 형식은 문화권 혹은 나라마다 다른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선 시대 유교의 영향 아래 개인의 일생에 수반되는 통과의례의 범위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로 규정되었다. 관례(冠禮)[성년식],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 중 관례는 과거 양반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혼례와 상례는 일반인도 반드시 치러야 할 의례로 이어져 왔다.

[혼례복]

1. 신부 옷

근대 시기, 신부의 혼례복은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혼례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는 경기도 양주 지역의 혼례복도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의례복을 입기 전 신부는 겉치마와 같은 감으로 된 남색 속치마를 입었으며, 속이 시원하라고 하는 뜻에서 저고리 속에 모시 속적삼[조끼적삼]과 연분홍 속저고리를 입었는데, 이렇게 저고리를 세벌 겹쳐 입는 것을 ‘삼작(三作) 저고리’라 하였다.

그 뒤 신부는 빨간색 치마에 노랑색이나 연두색 저고리를 입었다. 이런 풍습은 경기도 양주시 뿐만 아니라 어느 지방이든 공통적이지만, 시집살이를 당한다는 속설로 파란색 치마는 입지 않았으며, 꽃두선 치마라고 불리는 홑겹의 빨간색 치마에 흰 옥양목 허리를 달아 입었다. 여름용 옷감으로 영초(英綃)[중국에서 나는 비단의 하나], 도리사[중국에서 나는 베], 갑사, 숙고사, 항라 등을 썼고, 겨울용 옷감으로는 법단, 모본단, 오복수, 명주, 삼팔주 등을 썼으며, 형편에 따라 교직[비단과 인조견의 교직]이나 인조견을 사용하였다. 저고리는 반회장저고리로 회장감은 자주색으로 했으며, 보통 치마감과 같은 감으로 하되 봄가을에는 차렵저고리를, 겨울에는 솜저고리를 입었다고 한다.

치마와 저고리를 갖춰 입은 뒤 버선은 항상 두 켤레를 신었는데, 여름에는 홑버선 위에 겹버선을 신고 겨울에는 홑버선 위에 솜버선을 신었다고 한다. 그 뒤 색색의 비단으로 나비코를 싸서 만든 마른신을 신었으며, 일제 강점기부터 고무신을 신기도 하였다. 흰 고무신은 그 당시 매우 귀해서 구하기 힘들었고 보통은 검정 고무신을 신었으며 그 후 꽃고무신이 나와 신부에게는 최고의 호사품으로 애용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신부의 치장을 마무리하는 원삼과 족두리는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을 한층 돋보이게 해 주는 상징이었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원삼을 직접 만들기도 했으나 보통은 일가 친척집이나 마을에서 빌려 썼다. 약식으로 족두리를 쓴 뒤 큰 댕기를 드리고 치마·저고리 위에 한삼만 늘어뜨리기도 하였다. 원삼은 홑겹으로 만들고 연두색 길에 색동 소매를 달았는데, 모양은 전통적인 원삼의 형태와 같았다.

2011년 현재에도 신부가 한복에 원삼과 족두리를 갖추고 전통 혼례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러나 신식 결혼식을 치른 신부도 폐백을 드릴 때는 전통 복식을 갖추는 경우가 많으며, 신혼 여행길에도 치마·저고리 차림의 신부가 아직까지 눈에 많이 띤다.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행해지는 결혼식의 혼례복 차림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 신랑 옷

근대 시기, 신랑은 중의(中衣)와 적삼 위에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를 차례로 입은 뒤, 사모관대를 하고 목화를 신었다. 바지와 저고리는 여름이라도 명주로 하는 것이 최고의 호사였고, 두루마기는 여름에는 다듬은 모시 겹두루마기[안감은 다듬은 명주로 함], 봄가을에는 진세루로 만들어 입었으며 버선감으로는 광목 이외에 옥양목이나 양달령을 쓰기도 하였다. 사모관대는 주로 문중에서 빌렸으며 상투를 튼 경우도 간혹 있었으나 젊은 층에서는 거의 머리를 잘랐으므로 짧은 머리에 사모를 그대로 썼다.

2011년의 신랑 혼례복은 양복 차림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전통 복식을 갖추는 예가 거의 없다. 간혹 폐백 드릴 때 양복 위로 사모관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부는 전통 복식을, 신랑은 양복을 입으며 신혼 여행길에서도 마찬가지 광경을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서양식 의복이 대다수이다.

[상례복]

상례복은 상을 당했을 때 가족과 친지가 입는 의례복이다. 원래 상복에는 오복(五服)이 있어 죽은 자의 자손 관계와 신분으로 삼베의 질을 달리하여 착용하였으나 근래에는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11년 현재에도 집안의 가풍에 따라 굵고 거친 삼베로 남자는 최의(衰衣), 최상(衰裳), 중단(中單), 관[굴건], 수질(首絰), 교대(絞帶), 요질(腰絰), 상장(喪章), 행전(行纏) 등을 한다. 여자의 상복은 최복(衰服), 상(裳), 족두리, 수질, 요대, 교대 등인데 친소 근원에 따라 옷감과 바느질하는 법을 달리하였다. 종가의 며느리나 기혼자는 흰 족두리를 쓰고 미혼자는 머리끈을 하였다.

수의(壽衣)는 사람이 죽어 염습할 때 시신에게 입히는 옷으로, 가문과 신분, 빈부의 차이에 따라 형태의 차이가 있었다. 수의의 형태는 생전 예복과 같은 길복으로, 치수를 생전의 옷보다 크고 넉넉하게 만드는데, 시신에게 쉽게 입히기 위해서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삼베나 모시를 수의로 많이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삼베로 만든 수의가 우리의 전통 풍습이 아님을 보여준다. 궁핍했던 일제 강점기, 망자에게 깨끗이 입힐 마땅한 평상복이 없을 정도로 살기 힘들었던 세태가 삼베 수의를 일반화시킨 것으로 추측되는데, 마의태자와 관련된 역사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전통적으로 삼베는 죄인의 옷이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2001년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 묘역에서 350여 년 전에 사망한 소년 미라가 발굴되었는데, 소년이 착용한 수의는 천을 덧대고 기운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뤄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바느질 등은 정갈해서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발굴 당시 이 소년 미라에서는 부모와 형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큰 누비옷들이 소년의 몸을 감싼 채 발견되었다. 이는 차디찬 땅속에 어린 생명을 묻어야 하는 가족들의 애틋한 심정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생전에 입었던 일상복으로 염습을 했던 조선 시대 장례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한다.

[제례복]

제례복은 차례를 지낼 때 착용하는 의복을 말한다. 제례는 설날과 정월 대보름날, 한식, 추석, 동지 등의 주요 명절에 신명(神明)을 받들어 복(福)을 비는 의례를 뜻하며, 이를 차례(茶禮) 또는 차사(茶祀), 절사(節祀)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남자 제례복은 복건을 쓰고 심의(深衣)를 입었으나,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도포로 바뀜에 따라 흑립(黑笠)이나 유건(儒巾)을 주로 착용하였다. 2011년 명맥을 잇고 있는 몇몇 종가 가문에서 도포에 유건을 쓴 채 제례를 지내고 있으며, 기제사 때는 두루마기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제례복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평상복이나 깔끔한 양복 차림을 선호하며, 설이나 추석과 같은 주요 명절에는 한복 차림으로 제례를 지내기도 한다.

[기타 의복]

1. 출생복

출생복(出生服)은 탄생과 더불어 입는 옷을 말하며, 배냇저고리라고 한다. 경기도 양주시의 정영민[여, 73세]에 의하면, 배냇저고리는 자녀들이 성장하여 시험을 치러 갈 때나 군대에 갈 때 넣어 주면 액을 면한다고 하여 오랫동안 보관했다고 한다. 배냇저고리의 고름은 실을 꼬아서 만드는데, 여기에는 아이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2. 돌복

태어난 지 만 1년이 되는 날에 입는 돌복은 남아의 경우 바지·저고리·조끼·색동마고자를 입히고, 여아의 경우 다홍치마와 노란 색동저고리에 염낭을 단다. 염낭에는 은으로 장식된 노리개를 달아 준다. 색동은 위험을 면하고 복을 받기 위해 음양오행설의 오방색[동쪽은 청(靑) 중앙은 황(黃), 남쪽은 적(赤), 서쪽은 백(白), 북쪽은 흑(黑)]을 입혔다. 타래버선은 남아와 여아 모두에게 신겼는데, 버선코에는 술을 달고 버선 등에는 수를 놓았다. 그러나 2011년 현재의 돌복은 대부분 기성복이 대체하고 있으며 경기도 양주 지역도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3. 환갑

부모의 환갑을 맞은 자식들은 자식 된 도리로서 최고의 전통 의복을 마련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요즈음엔 생활의 간소화로 이런 관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환갑을 맞은 아버지는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 위에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며 집안에 따라 도포를 입기도 하는데 도포는 상 받기 전에 입었다가 상을 받으면 벗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겨울에는 조바위를 쓰며 집안에 따라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타래버선을 신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환갑 때는 분홍치마와 저고리를 입기도 했었다고 한다. 자식 중 아들과 사위는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두루마기 등을 입었는데, 특히 절할 때 반드시 두루마기가 필요해 형편이 어려워도 두루마기를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며느리와 딸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한삼을 늘어뜨린 뒤 절을 하는데 집안에 따라 족두리를 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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