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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을 망하게 하는 하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679
한자 上典- 亡- 下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양주시
집필자 조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일제 강점기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양주군지』에 수록
성격 설화|소화|사기담
주요 등장 인물 양반|하인|떡방아 찧는 여자|꿀 장수|노승|딸|애꾸눈 장수
모티프 유형 상전을 골탕 먹인 꾀 많은 하인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상전을 골탕 먹이는 하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상전을 망하게 하는 하인」은 상전을 골탕 먹이던 하인이 상전뿐만 아니라 방아를 찧는 여인, 꿀 장수, 애꾸눈 장수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을 속여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는 소화(笑話)이다. 속고 속이기 유형에 속하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채록된다.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속이며 돌아다니는 하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상전을 망하게 하는 하인」은 사람들을 속여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므로 사기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출간한 『양주군지』에 수록되어 있고, 출전은 1989년 임석재가 집필하고 평민사에서 발행한 『한국구비설화』이다. 일제 강점기에 양주 지방에서 채록하였다고 한다.

[내용]

옛날에 한 양반이 하인을 하나 두었는데, 이 하인의 이름은 왕군장골때였다. 하루는 이 양반이 궐에 들어갈 일이 있어 가는 길에 이 왕군장골때를 데리고 갔다. 양반은 길을 가다가 시장기가 돌아 왕군장골때에게 술이나 한 잔 사오라고 하였다. 왕군장골때는 술을 사가지고 오면서 손가락을 술잔 속에 집어넣어 휘휘 저었다. 양반은 왕군장골때에게 어째서 술에 손가락을 넣어서 저으며 오느냐고 물었다. 왕군장골때는 자기가 고뿔이 들었는데 술을 사가지고 오다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코가 술 속에 떨어져 코를 건져 내려고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양반은 그걸 어디 먹겠느냐고 하며 너나 먹으라고 왕군장골때에게 주었다. 왕군장골때는 좋아라 하면서 그 술을 받아먹었다.

양반은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왕군장골때에게 국수를 사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왕군장골때가 또 국수를 사오면서 손가락으로 국수를 뒤적거리면서 오는 것이었다. 양반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왕군장골때가 또 코를 빠트렸다고 하였다. 양반은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 국수를 왕군장골때에게 주었다.

양반이 이렇게 하여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궐에 도착하였는데, 궐로 들어가면서 타고 온 말을 왕군장골때에게 맡겼다. 그리고 서울이란 곳은 눈을 빼먹는 곳이니 정신 차려서 말을 잘 간수하라고 하였다. 양반이 궐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자 왕군장골때는 말을 팔아먹었다. 그리고 말의 고삐만 꽁무니에 차고 엎드려서 눈을 손으로 부둥켜 쥐고 있었다. 양반은 궐에서 나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말을 어쨌느냐고 물었다. 왕군장골때는 양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척하며 서울이란 곳이 눈을 빼먹는 곳이라고 하여 눈을 못 빼가게 눈을 부둥켜 쥐고 있느라 말고삐를 끊고 가져가는 놈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양반은 화가 잔뜩 나서 이놈을 더 데리고 다니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왕군장골때의 등에다 편지를 써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왕군장골때는 다시 시골에 있는 양반의 집으로 내려가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여자들이 찰떡방아를 찧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군장골때는 그 앞으로 가서 자기가 떡 방아 찧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방아확에 있는 찰떡을 뭉쳐 주다가 어느 정도 떡이 커지자 옆에서 놀고 있던 두서너 살 된 어린아이를 방아확 속에다 밀어 넣고 도망쳐 버렸다. 방아를 찧던 여자들은 쫓아가서 잡으려고 해도 방아를 놓으면 방아확에 있는 아이가 다칠 것 같아서 소리만 지르고 쫓아오지 못하였다.

왕군장골때는 찰떡을 뭉쳐 들고 시골에 있는 양반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러다가 도중에 꿀 장수를 만났다. 왕군장골때는 꿀 장수에게 찰떡으로 그릇 모양을 만들어서 여기에 꿀을 가득 차게 하여 팔라고 하였다. 그런데 꿀 장수가 꿀을 한 초롱 다 부어도 그릇이 차지 않는 것이었다. 왕군장골때는 꿀이 그릇에 다 차지 않으니 안 사겠다고 하면서 그릇에 남아 있는 꿀을 꿀 장수에게 부어 주고 길을 떠났다.

왕군장골때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꿀이 묻은 찰떡을 먹고 있는데 노승 하나가 지나갔다. 왕군장골때는 노승에게 찰떡을 조금 나눠 주었다. 노승은 먹어 보니까 떡이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아 더 달라고 하였다. 왕군장골때는 좀 더 줄 테니 등에 쓰여 있는 편지에 무어라고 쓰여 있는지 좀 봐달라고 하였다. 노승은 이 놈 왕군장골때가 내려가거든 당장에 대매로 죽여 없애라고 쓰여 있다고 말해 주었다. 왕군장골때는 그 편지를 찢어 버리고 왕군장골때가 내려가거든 즉시 누이하고 혼인을 시키고 집 앞에 따로 집을 지어 살게 해 주라고 쓰라고 하였다. 노승은 왕군장골때의 말대로 써 주고 꿀이 묻은 찰떡을 얻어먹었다.

왕군장골때는 양반의 집에 도착하여 시치미를 떼고 식구들 앞에 엎드렸다. 양반의 집 식구들이 왕군장골때의 등을 자세히 살펴보니 등에 양반의 편지가 쓰여 있었다. 식구들이 읽어 보니 편지에는 왕군장골때를 사위로 삼고 집을 지어 주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크게 벌하겠다는 말도 쓰여 있었다. 양반의 식구들은 하는 수 없이 편지에 쓰여 있는 대로 왕군장골때를 살게 해 주었다.

몇 달 후 양반이 볼 일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에게 왕군장골때를 죽였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식구들은 편지에 쓰여 있는 대로 왕군장골때를 사위로 삼고 집까지 지어 살게 해 주었다고 하였다. 양반은 잔뜩 화가 나서 새끼로 망태기를 만들어 왕군장골때를 넣은 다음 뒷동산에 있는 높은 나무에 매달아 놓고 다음날 죽이겠다고 하였다.

왕군장골때가 망태기 속에 들어앉아 있는데 마침 애꾸눈으로 통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 지나갔다. 왕군장골때는 계속 ‘눈떴다, 눈떴다’라는 말을 하였다. 애꾸눈인 사람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왕군장골때는 자기가 애꾸눈이었는데 여기에 들어앉아서 ‘눈떴다, 눈떴다’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눈이 떠졌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애꾸눈 장수는 자기도 거기에 들어앉아서 ‘눈떴다, 눈떴다’ 하고 있으려고 왕군장골때를 망태기에서 꺼냈다. 그리고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왕군장골때의 말대로 ‘눈떴다, 눈떴다’ 하고 있었다.

이튿날 양반은 망태기 속에 있는 애꾸눈 장수를 보고 왕군장골때가 다 죽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양반은 애꾸눈 장수가 왕군장골때인 줄 안 것이다. 그래서 애꿎은 애꾸눈 장수를 왕군장골때로 착각하고 죽였다.

왕군장골때는 죽지 않고 살았으니 또 무슨 방책을 꾸며 상전을 해칠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모티프 분석]

「상전을 망하게 하는 하인」의 주요 모티프는 ‘상전을 골탕 먹인 꾀 많은 하인’이다. 상전을 따라 서울에 간 하인이 상전을 속여 물건을 빼앗자 화가 난 상전은 하인의 등에 ‘하인이 도착하면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집으로 돌려보낸다. 하인은 여인을 속여 떡을 빼앗고, 꿀 장수를 속여 꿀을 빼앗는다. 또 하인은 노승에게 등에 쓰인 편지의 내용을 바꿔 달라고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상전의 뜻인 것처럼 상전의 딸과 혼인하여 산다. 나중에 하인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전은 직접 나서서 하인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번에도 하인은 상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도망친다.

꾀 많은 하인이 등장하는 민담은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이 모티프는 하인을 인간적으로 무시하는 상전을 속여서 원하는 것을 얻거나, 하인을 못살게 구는 상전을 속여 상전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상전과 하인의 갈등을 축으로 꾀 많은 하인 모티프 설화 유형의 많은 이야기가 전승되는 것은 못 가진 자, 신분이 낮은 자로서 현실적으로 상전에 대항할 수 없는 설움과 한을 해학과 골계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 시대 후기의 시대상과 맞물려 민중들의 신분 질서를 재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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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5 맞춤법 수정 맞춤법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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