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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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院洞- |
영어의미역 | Wondong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원리 원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원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원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작원관원문(鵲院關院門)의 ‘원(院)’과 토곡산의 ‘곡(谷)’을 땄는데, 곡이 동과 뜻이 상통하여 원동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원동마을은 원리(院里), 함포(含浦) 두 자연 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 서면 면리조에는 원동리, 함포리로 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동리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양산읍지초(梁山邑誌草)』에 의하면 “원동진에 배 1척과 원동관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수로 교통의 요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원동은 삼한시대부터 존재해 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옛사람들이 황산강(지금의 낙동강) 수로를 교통 수단으로 삼는 한편 강변을 따라가는 육로 또한 교역의 대로로 삼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원동마을은 본동 외에 삼정지마을, 관사마을, 소원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삼정지마을은 옛날 정자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고 전한다. 관사마을은 경부선 철로가 개통되고 원동역이 새로 건립되자 역원들의 관사 10여 호가 들어서서 생긴 이름이었다. 소원동은 당초 3가구에 불과했으나 1896년부터 옹기 터가 생기면서 세대 수가 점점 늘어나 현재는 규모 있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옹기 터는 1976년까지 보존됐지만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폐지되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고 원동역이 신설됨에 따라 교통의 중심지로 급속히 발전하였다. 1926년 면사무소가 용당리에서 이전한 후로 면의 중심지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경부선 철도 원동역을 관문으로 함박산[토곡산]을 등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현황]
원동마을은 원리의 중심 마을로 2007년 12월 31일 현재 총 217세대에 47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농경지는 없고, 역을 중심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한 때는 5일장인 정기 상설 재래시장이 열린 적도 있었다. 원동마을은 과거나 지금이나 앞에는 낙동강과 철로가, 뒤편은 비탈진 산이 둘러쳐져 있는 지세를 띠고 있어 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나 쇠뿌리 점터(홀쨍이, 조선솥, 가마솥 제작)가 생기자 생계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이 당시 영·호남에서 가장 큰 쇠뿌리 점터로 소문이 나기도 하였다. 주요 기관으로는 면사무소, 원동농업협동조합, 원동역, 세덕사 등이 있다. 경부선 원동역과 지방도 1022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