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1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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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重調歌談 寧越斷腸曲 |
영어공식명칭 | Jungjo-Gadam Song Of Breaking The Intestines In Yeongwo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낙현 |
[정의]
강원도 영월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단종의 애사를 창연 형식으로 창작하여 1936년 발표한 극작가 현철의 작품.
[개설]
「중조가담(重調歌談) 「영월단장곡(寧越斷腸曲)」」은 1936년 2월 1일 『삼천리(三千里)』 제8권 제2호 152쪽부터 161쪽에 걸쳐 수록된 글이다. 현철(玄哲)[1891~1965, 본명 현희운(玄僖運), 필명 현당(玄堂)]이 원작을 만들고, 단종(端宗)[1441~1457]의 유배 과정과 애사(哀史)를 창연한 문학작품이다. 「중조가담 「영월단장곡」」은 단종의 이야기를 해설과 인물들의 대사에 창(唱)을 가미한 대본이다. 작가 현철은 스스로 ‘창연’이라고 불렀다. 「중조가담 「영월단장곡」」은 당시 식민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서사였던 단종 애사를 활용한 공연이며 가담(歌談)의 형식적 특성을 가시화한 작품이다. 1935년 12월 1일 『삼천리』에 발표되었던 「단종애곡, 중조가담 「영월단장곡」」의 후속편이다. 1935년 10월 21일 경성중앙방송국에서 가담 「영월단장곡」을 30분용 라디오방송극으로 방송하였다.
[구성]
「중조가담 「영월단장곡」」은 전반부에는 단종 애사에 관한 현철의 창연과 해설로 구성되었고, 후반부는 공연 형식으로서 당시 현철이 처음으로 만들었던 삼담(三談)에 관한 설명으로 구성되었다.
[내용]
『삼천리』 제8권 제2호에 게재된 「중조가담 「영월단장곡」」의 전체 원고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전반부는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에 상왕[단종]이 강원도 영월에서 3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였으며, 부모님의 묘도 찾아뵙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이에 내인은 냉수도 정성이 담겨 있으면 되니 냉수 한 그릇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게 한다. 단종은 차례로 지방(紙榜)을 써서 세종(世宗)[1397~1450]과 자신의 부모, 자신의 할머니인 혜빈양씨(惠嬪楊氏), 숙부인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 부자와 화의군(和義君)에 대한 제를 올린다. 그리고 단종을 따르다 죽음을 맞이한 사육신(死六臣)을 위하여서 제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외조모와 외숙 권씨, 장인, 장모, 자신을 키워 준 이오 부처를 위하여 제를 올리면서 자신의 처지를 통탄한다.
단종이 영월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단종을 잊지 않고 변장을 하고서 영월을 찾아온 사람으로는 조상치(曹尙治), 구인문(具人文), 원호(元昊), 권절(權節), 송간(宋侃), 박계손(朴季孫), 류자미(柳自湄) 등이 있었다. 또한 천고의 의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단종의 신하는 아니었지만, 벼슬을 버리고 중이 되어 영월로 찾아와 단종에게 문후를 드렸다고 한다. 또한 골육상잔(骨肉相殘)으로 권력을 찬탈한 수양대군(首陽大君)[1417~1468]과 단종을 배신한 정인지(鄭麟趾)[1396~1478], 신숙주(申叔舟)[1417~1475] 등을 원망하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창연자는 사육신의 충절을 대중들과 함께 찬양하여 우리 역사에 자랑거리를 만들고, 뜻있는 생활에 도움이 될까 하여 새롭게 만들어 낸 가담의 일절에 ‘영월단장곡’을 반영하였다고 밝힌다.
후언(後言)이라 이름 붙인 후반부에서는 저자인 현철 자신의 연극 학교를 세우고 사재를 털어 연극에 헌신하였던 이력을 간략히 밝힌다. 또한 연극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연극과 같은 것이 없는지 생각한 나머지 삼담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현철은 대중에게 “유의한 오락, 취미와 실익에 한 보탬이 되게 하는 동시에 사회에 대한 교화물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징]
「중조가담 「영월단장곡」」은 영월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단종의 비탄 어린 목소리를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여러 역할을 창연자가 1인 다역을 통하여 창으로 표현한다. 사이사이 해설을 넣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담 공연의 특색이 반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중조가담 「영월단장곡」」에서 제시하고 있는 ‘삼담론(三談論)’은 현철이 연극예술을 통하여 민중을 교화하고, 민족의 의지력을 결집하여 식민지 조선의 문제를 타개하고자 하였던 근대 초기 연극적 이상과 연동하고 있다다. 삼담은 현철이 만든 신조어인데, 연담(演談), 가담(歌談), 산담(散談)이라는 세 가지 공연 형식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삼담은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의 대중문화계를 장악하였던 야담, 만담과 함께 담류(談類)의 새로운 지류를 만들어 보고자 하였던 현철의 창작 공연물이다. 삼담은 많은 시간과 돈, 사람을 잃은 후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1인극 독연(獨演) 형식의 공연이다. 현철은 10개월 정도 동대문의 움막에 칩거하며 화술 연구를 한 끝에 세 가지 화술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삼담은 민중 교화와 공리성이라는 이념적 명분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연극 교육자 현철이 보여 준 고투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