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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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Folktale of Geulseongbawi Rock |
이칭/별칭 | 「글씬이바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월호리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월호리에 있는 글성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장생불사하고자 시종인 서불(徐巿)을 불러 동방 삼신산(三神山)을 찾아 불로초를 구해 오라는 어명을 내렸다. 이에 서불은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거느리고 삼신산으로 떠나게 되는데, 여수에는 여수시 남면 연도리에 속한 연도(鳶島)와 화정면 월호리에 속한 월호도(月湖島) 두 곳을 다녀갔다고 전한다.
[채록/수집상황]
2000년 발간된 『화정면지』에 「글성바위」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
서불 일행은 먼저 경상남도 남해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불로초가 있을 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으나 그 흔적조차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사냥만 즐기다가 남해 상주면 양아리에 있는 바위에 ‘서불과차(徐巿過此: 서불 일행이 이곳을 지나가다)’를 새겨 놓고 여수 남면 소리도[현 여수시 남면 연도리 연도]로 출발하였다. 혹시 그곳 필봉산에 불로초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필봉산에 도착한 서불 일행은 산을 샅샅이 뒤졌으나 역시 불로초는 찾지 못하고, 도리어 두 명의 장수를 잃고 말았다. 일행은 두 장수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남해 상주면 양아리 바위에다 새겼던 것처럼 까랑포 해안 절벽 바위에 붉은 색깔로 ‘서불과차’라 새겨 놓고 다시 떠났다. 소리도에는 진시황의 장군이 죽어 이곳에 묻혔다는 2기의 묘가 있으며, 소리도 사람들은 이 묘를 장군묘라고 부르고 있다.
얼마 후, 서불 일행은 월호도에 도착하여 불로초를 찾았으나 역시 실패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러면서 역시 소리도 해안 절벽에 새겨 놓았던 것처럼 남쪽 해안 칼바위에 ‘서불과차’를 새겨 놓았다. 이로 인하여 후세 사람들은 이 마을을 ‘글을 잘하는 동네’라 하여 글성마을 또는 글씬이마을이라 하고,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글성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진시황의 어명을 받은 서불 일행이 불로초를 찾아 화정면 월호도에 도착하여 글씨를 남겨 두고 떠났다는 이야기로 글성바위의 이름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글성바위」와 비슷한 이야기는 제주를 비롯해서 남해, 통영 등에도 전한다. 서불 일행이 불로초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녔다는 이야기가 남해안을 중심으로 비슷하게 전승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