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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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防踏僉使鎭 |
영어음역 | Bangdapcheomsajin |
영어의미역 | Dolsan Army Office |
이칭/별칭 | 방답진(防踏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병호 |
성격 | 방어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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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1523년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
[정의]
1523년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설치한 수군 진(陣).
[개설]
방답첨사진은 지금의 돌산읍 군내리에 있었던,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최일선 수군거진(水軍巨鎭)이었다. 원래 돌산은 고려시대까지는 돌산현으로 독립된 행정단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여수현과 함께 폐현시켜 순천부의 일개 면으로 귀속시켜 버렸다. 1523년(중종 18) 전라좌수영 관하에 방답첨사진을 군내리에 설치하니 이때부터 돌산은 왜적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최일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변천]
전라좌수영 관하에는 조선 초기부터 1첨사, 7만호 제도로 내려왔는데, 중종대에 들어와서 남해안 수군기지를 정비·강화할 때 왜적 방비의 요충인 돌산도(突山島) 남단에 방답첨사진을 새로 설치하면서 2첨사, 6만호 제도로 변경되었다.
방답첨사진이 새로 생긴 대신 화양면 용주리 고진에 돌산포 만호진이 혁파되었는데, 그곳에 있던 병선(兵船)과 수군(水軍)이 방답진에 인계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많은 해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방답구선(防踏龜船)은 다른 곳이 아닌 이곳 방답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학계의 새로운 주장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위치]
방답첨사진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도 남단에 설치되었는데, 남향으로 앉아 있고 앞바다는 오목(凹)형의 만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앞에는 송도(松島)가 가로놓여 있어 천연의 양항(良港)을 이루고 있다.
[현황]
방답첨사진은 1523년에 설치된 이래 373년 동안 남해안 왜구 방어의 거진으로 큰 몫을 다하였으나, 조선 말기인 1895년(고종 32) 일제의 강압으로 각도의 병·수영이 혁파될 때 폐진되어 지금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