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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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谷里 |
영어음역 | Un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순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지대가 높아 용두산과 국망봉 사이 골짜기에 항상 구름이 서려 있어 구름실·구래실·구레실이라 하였다. 운곡(雲谷)은 구름실의 한자 표기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 예안군 의서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곡·도곡·황정이 병합되어 운곡동이 되고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도산면 서북쪽의 용두산(龍頭山, 661m)과 서쪽 지맥인 국망봉(國望峯, 480m)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용두산에서 발원하는 상계천(上溪川)이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운곡리와 녹전면 매정리 경계에 있는 용두산은 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수산(龍首山) 또는 용수사(龍壽寺)에서 따서 용수산(龍壽山)이라고도 한다. 용두산 꼭대기에 기우단이 있고, 산기슭에 용수사가 자리 잡고 있다.
국망봉은 도산면 온혜리와 녹전면 신평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퇴계 이황(李滉)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있을 때 간신배들이 명종(明宗)에게 올린 물에 사약을 넣은 것을 알고 국망봉에서 관망하다가 축지법으로 궁궐에 이르러 상을 물리게 하고 명종을 구했다고 한다.
국망봉 정상에는 ‘국망봉(國望峰)’을 각각 한 자씩 새긴 세 개의 바위가 있고, 국망봉단비(國望峯壇碑)가 서 있다. 진성이씨(眞城李氏) 온혜리 입향조인 노송정(老松亭) 이계양(李繼陽)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정상에 단(壇)을 쌓고 매년 10월 24일 단에 나아가 북쪽을 바라보고 절하기를 30년 동안 하였다고 한다.
대왕수(大王藪)는 운서대 일대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숲으로, 고려 때 최선(崔詵)의 「용수사기(龍壽寺記)」에 따르면, “용두산 남쪽에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 입구에 큰 숲이 있는데 그곳 사람들이 일컫기를 대왕수라 한다. 대개 우리 태조 임금께서 순시하며 조사하시다가 남방에 이르러 여기에다 병사를 주둔시키시고 3일 후 떠나가셨다. 여태껏 그 땅에는 큰 나무와 무성한 풀이 있으나 나무꾼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니 신물(神物)이 이를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현황]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7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40세대에 74명(남자 40명, 여자 3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황정·구름실·도실·갈골·서암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황정은 마을 뒤편 골짜기에 황정목이 많이 나고, 조선 중기에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設書)를 지낸 이립(李笠, 1571~1616)이 지은 정자 금학당(琴鶴堂)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구름실 어귀에 있는 정바우는 임진왜란 때 구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혈(穴)을 잘랐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실제 정 자국이 남아 있었으나 수십 년 전에 도로 공사로 매몰되었다.
역시 구름실에 있는 종바위[鍾巖] 또는 북바위는 종을 닮았다고 종바위, 북을 닮았다고 북바위로 부른다. 북바위가 떨어져 나왔다는 맞은편 석벽에는 해서체로 ‘운서대(雲棲臺)’라고 새겨져 있다. 도실에는 현재 영천이씨 몇 집이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암 이현보(李賢輔)를 향사한 분강서원(汾江書院)과 농암 종택의 사랑채인 긍구당(肯構堂), 영천이씨 재실인 도곡재사(道谷齋舍) 등의 문화 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