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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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Goindol |
영어의미역 | Dolmen |
이칭/별칭 |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임세권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분묘로서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세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고인돌 중에는 분묘 이외에 제단의 기능을 가진 것도 있다는 설이 있어 모든 고인돌이 분묘인지는 현재 확인할 수 없다.
[탁자식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은 주로 한강 이북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네 장의 판석으로 벽석을 막은 대형 석곽을 지상에 세우고 그 위에 지붕에 해당하는 대형 판석을 덮은 형태이다. 마치 탁자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평안남도·평안북도·황해도 지역, 남한의 경기도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고 전라북도 고창군, 강원도, 경상북도 지역에 소수 분포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랴오닝성[遼寧省]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규모는 한반도의 고인돌보다 큰 편이고 돌을 다듬은 상태도 세련되었다.
[바둑판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은 큰 개석의 밑을 여러 개의 작은 돌로 받치고 있는 형태로서 바둑판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석 아래의 받침돌은 지석이라고도 부른다. 지하에는 토광이나 석곽을 매장 시설로 설치하였다. 개석의 형태는 판석형, 육면체, 부정형의 괴석형 등 매우 다양하다. 주로 한강 이남, 특히 영남과 호남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개석식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은 바둑판식 고인돌에서 받침돌을 제거한 형태를 말한다. 지하의 매장 시설은 바둑판식과 비슷하여 토광·석관·석곽 등이 있다. 개석식 고인돌 가운데 하나의 개석 아래에 여러 개의 석곽을 둔 것을 묘표식 고인돌이라 하기도 한다.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특히 영남과 호남 지역 등 남부 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최근에는 중국 랴오닝성 지역에서도 상당수 조사된 바 있다. 현재 중국의 랴오닝성 고인돌이 가장 먼저 발생되었다는 설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한반도의 개석식 고인돌에서 기원되었다는 설도 있다.
[안동 지역의 고인돌]
안동 지역에는 주변의 영주·봉화·영양·청송·의성 등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수적으로도 적은 편이다. 대부분 개석식이 많지만 바둑판식도 있다. 다만 바둑판식은 받침돌이 흙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 개석식처럼 보이므로 현재 개석식으로 보이는 고인돌 중에는 바둑판식도 여럿 포함되어 있으리라 여겨진다.
안동과 가까운 봉화군 재산면에는 탁자식으로 보이는 고인돌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도 탁자식 고인돌이 소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물로는 민무늬 토기·홍도·마제석검·마제 석촉 등이 주로 출토되며, 비파형 동검 등 청동기 유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안동 지역의 대표적 고인돌 유적으로는 1988년 임하댐 수몰 지구 조사 당시 발굴된 지례리 고인돌군이 있다. 개석 크기는 왜소한 편이지만 수십 기가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비교적 큰 개석을 가진 몇 기의 유구에서는 마제석검과 석검 손잡이 장식 등 주목할 만한 유물이 출토되어 안동 지역 고인돌 문화의 실상을 보여 준 바 있다.
개석은 작은 것이 길이 83㎝, 너비 75㎝, 두께 29~40㎝ 정도이고 큰 것은 길이 298㎝, 너비 250㎝, 두께 160㎝ 정도이다. 대부분은 길이 10~200㎝ 정도의 소형이다. 매장 주체부인 하부는 개석 밑에 둥근 냇돌이나 자연석을 적당히 돌려놓아 매장 시설로 이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유구 바닥에는 아무 시설이 없는 것이 많고 부장 유물도 매우 빈약하다. 강물의 범람과 토사 퇴적 등으로 확실한 유구 상태를 알기 어렵지만 원래 부장품이 적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매장부의 유구가 남아 있는 것은 모두 22기인데 이 중 세 기의 유구에서 마제석검과 석검 손잡이 장식, 민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부의 크기는 길이 150㎝ 이상이 3기이고 대부분이 150㎝ 이하이며 유구의 높이도 매우 낮다. 따라서 신전장은 물론 굴장도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 세골장과 같은 이차장을 시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례리 이외의 고인돌 유적으로는 송천동 고인돌, 임하1리 고인돌, 신석리 고인돌, 신덕리 고인돌군, 금소리 고인돌군, 수곡리 고인돌, 마령리 고인돌, 정산리 고인돌, 태곡리 고인돌, 신남리 고인돌, 장기리 고인돌, 소산리 고인돌, 신성리 고인돌, 금계리 고인돌, 산야리 고인돌, 계곡리 고인돌, 도곡리 고인돌 등이 있다.
이 중 도곡리 고인돌과 신남리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으나 지하에서 특별한 유구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도곡리 고인돌은 개석 길이 600㎝로 안동 지역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이다. 안동 지역 고인돌은 규모, 분포 수,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다른 지역보다 시기적으로 늦을 것으로 보이며 청동기시대 후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