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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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素山洞東野古宅 |
영어공식명칭 | Dongya's Old House Sosandong, Andong |
영어음역 | Andong Sosandong Dongya Gotaek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12월 29일 - 안동 소산동 동야고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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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0월 22일 - 안동 소산동 동야고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4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소산동 동야고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고가 |
양식 | 홑처마 민도리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12 |
소유자 | 김각년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소산동 동야고택은 안동김씨 19세손인 김중안(金重安, 1639~1705)이 지었다고 하나 건축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이 이 집에서 태어나 수학하였다. 김양근의 본관은 안동으로,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만녕전별검(萬寧殿別檢), 전적(典籍), 병조낭관(兵曹郎官) 등을 지냈다.
1773년 시폐(時弊)를 논하는 소를 올려 문제가 되자, 낙향하였다가 이듬해 지평(持平)에 복직되었다. 뒤에 현풍현감과 음죽현감을 역임하였고, 1799년 통정대부에 가자되어 형조참의를 지냈다. 문집으로 『동야집(東埜集)』 14권 6책이 있다.
김양근은 영조 때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어전의 면시(面試)에서 답안에 공자가어(孔子家語)의 「노인동야필사(魯人東埜畢事)」를 인용하였다. 이에 왕이 “동야선달은 어디 있나”라 부르면서 시권을 외우라고 명한 것을 기념하고자 호를 동야라 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 집의 이름이 되었다.
[위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소요산록에 동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형태]
‘一’자형 사랑채와 그 뒤쪽 ‘ㄇ’형의 안채가 튼 ‘口’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안마당과 면한 정면 4칸 중 왼쪽 2칸은 안대청이고, 오른쪽 2칸통은 앞면에 툇마루를 둔 안방이다. 안방 오른쪽에는 앞뒤 2칸통의 부엌 1칸, 고방 1칸에 뒤주를 달아내어 우익사를, 대청 왼쪽에는 건넌방과 그 앞쪽으로 통래칸 1칸, 사랑방 1칸, 사랑 마루방을 배열하여 좌익사를 이루게 했다.
사랑 마루방의 경우, 내외 구분에 따라 안채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안마당 쪽의 벽에는 창호를 설치하지 않았다. 안동 지방에서 이처럼 튼 ‘口’자형 주택의 정침에 사랑 기능을 포함시킨 예는 흔하지 않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一’자형 건물로 원래는 초가였다고 한다. 왼쪽으로부터 사랑마루 1칸, 사랑방 1칸, 마구간 1칸, 방앗간 1칸, 행랑방 1칸이 차례로 놓여 있다. 건물의 구조 양식은 막돌로 높게 쌓은 기단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3량가 홑처마 민도리집이다.
[현황]
1987년 12월 29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2012년 10월 22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70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박한 집으로 정침에 사랑 공간을 둔 흔치 않은 평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