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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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虛白堂宗宅 |
영어공식명칭 | Head Residence of Pungsan Gim Clan |
영어음역 | Andong Pungsangimssi Jongtaek |
이칭/별칭 | 유경당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33[황소나무길 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12월 1일 - 안동 허백당 종택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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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5년 8월 21일 - 안동 허백당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제284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허백당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고가 |
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00년(선조 33) |
정면칸수 | 3칸(사랑채)|7칸(정침) |
측면칸수 | 2칸(사랑채)|5칸(정침)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33[황소나무길 6] |
소유자 | 김각현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허백당 종택은 안동 풍산김씨의 대종가(大宗家)로, 집의 이름은 유경당(幽敬堂)이다. 안동 허백당 종택을 창건한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은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후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산음현감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고향에서 향병을 모아 안집사(按集使) 김륵(金玏)의 휘하에 들어가 민심 수습에 공헌하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기민 구제에 전력을 기울였다. 유고로 『유연당선생문집(悠然堂先生文集)』 4권 2책이 있다.
안동 허백당 종택을 재건한 학호(鶴湖) 김봉조(金奉祖, 1572~1630)는 류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 등을 지냈다. 그 뒤 단성현감·경상도도사·익산군수·예조정랑을 거쳐 사헌부지평·제용감정에 이르렀다. 저서로 『학호문집(鶴湖文集)』 3권이 있다. 영천(榮川)의 구호서원(鷗湖書阮)에 제향되었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33번지[황소나무길 6]에 있다. 풍산읍 오미리 동네 표지석에서 300m쯤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을 따라 약 150m 정도 가면 왼쪽에 위치한다.
[변천]
안동 허백당 종택은 1554년(명종 9) 김대현이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 김봉조가 다시 건립하였다. 서쪽에 있는 대청은 1614년(광해군 6)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형태]
안동 허백당 종택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가묘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正寢)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 주택에 사랑마루 한 칸이 돌출되어 정면이 7칸이 되었다.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 토벽을 쌓아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내벽과 외벽을 만들어 두었다. 안방은 병렬 2칸으로 부엌에 접하면서 남향하였는데 앞에 툇마루가 있다.
수장처가 여기저기에 마련되어 있다. 안방과 부엌, 외양간 등의 상부에 모두 다락을 만들어 두었는데, 특히 안방 상부를 더그매로 하여 수장 공간을 만든 수법은 안동 지방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부엌 상부를 앞쪽은 고미다락, 뒤쪽은 우물마루로 달리 꾸민 것도 눈에 띈다.
정침의 사랑방은 3칸이다. 두 칸은 방으로 하고 끝의 1칸만 마루를 깔았다. 사랑방 위의 지붕은 별도로 구성하여 팔작지붕을 올렸다. 원래 사랑채 구실을 하였지만 서쪽에 따로 사랑채를 지으면서 작은 사랑으로 바뀌었다. 사랑채는 정침 서쪽에 별도로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기단을 높이 조성하고 팔작지붕을 올려 주인이 거처하는 곳의 격식을 갖추었다. 대청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청은 쪽마루를 두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현황]
안동 허백당 종택은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2015년 8월 21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8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각현이다.
[의의와 평가]
형태상 약간의 변형이 있지만 16세기 살림집의 원형을 비교적 잘 지니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좌측으로 별도의 작은 사랑채를 두어 사랑채가 두 개인데, 이는 일반 민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