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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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邊中一忠孝閣 |
영어음역 | Byeonjungil Chunghyogak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Byeon Jungi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규복 |
성격 | 비각|충효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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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86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효각.
[개설]
변중일 충효각(邊中一 忠孝閣)은 간재(簡齋) 변중일(1575~1660)의 충성과 효행을 기려 건립한 것이다. 변중일은 임진왜란 당시 할머니와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어 피난을 가지 못하고 간호를 하였다. 어느 날 왜병이 할머니를 해치려 하자 대신 죽겠다고 자청하였는데, 왜병이 효심에 감복하여 깃발과 칼을 신표(信表)로 주고 물러났다 한다. 또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화왕산성을 수비하는 등 의병 활동도 하였다. 이러한 충성과 효행을 기려 왕이 충효각을 세워 주게 하였다.
[위치]
변중일 충효각은 서후면 금계리 만운마을 원주변씨 종택 앞에 있다. 만운교에서 4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홍살문이 원주변씨 종택으로 들어가는 초입부이다. 홍살문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작은 도로를 따라가면 충효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변천]
영남안렴사(嶺南按廉使)의 건의로 왕명에 의해 1686(숙종 12) 세워졌다가, 1847(헌종 13) 중수되었다. 『고계집(古溪集)』에 따르면, 이휘령(李彙寧)이 지은 「충효정려후기(忠孝旌閭後記)」는 정려각(旌閭閣)을 중수하면서 김방걸(金邦杰)이 쓴 서문의 내용 가운데 빠진 부분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지붕의 양쪽에는 풍판(風板)이 달려 있다. 건물 전면 상단부에는 ‘정충효각(㫌忠孝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현판과 2개의 기문이 벽에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변중일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감탄하고 물러날 만큼 효행이 뛰어났고 또한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성을 수비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한 충신으로, 한 사람이 충과 효를 겸비하여 정려를 받은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