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99 |
---|---|
한자 | 李汯神道碑 |
영어음역 | Yigoeng Sindo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Yi Goe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규복 |
성격 | 비|신도비 |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전기 |
관련인물 | 이굉(李浤, 1440~1516) |
재질 | 석재 |
높이 | 177㎝ |
너비 | 38㎝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 신도비.
[개설]
비석(碑石)은 고인의 사적(事蹟)을 칭송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문장을 새겨 넣은 돌을 말한다. 비석의 종류에는 신도비(神道碑)가 포함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만 세울 수 있게 제도화하였다.
이굉(李浤, 1440~1516)은 자는 심원(深源)이고, 호는 낙포(洛浦)·연생당(戀生堂)이며, 본관은 고성(固城)이다.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가 되었고, 1493년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500년(연산 6) 사헌부집의를 거쳐 개성부유수가 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김굉필(金宏弼)의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후 다시 기용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안동에 내려가 귀래정(歸來亭)에서 풍류를 즐겼으며 시문(詩文)에 능했다.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총묘(塚墓)」에 “유수(留守) 이굉(李浤)의 묘는 부의 남쪽인 순천사(順天寺) 골에 있다. 참판 황효헌이 갈문을 지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치]
이굉 신도비(李汯 神道碑)는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 귀래정(歸來亭) 남쪽 대문 밖에 인접하여 있다. 영가대교를 건너 나오는 사거리에서 바로 왼쪽 모퉁이에 자리한다.
[변천]
1998년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인근 지역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형태]
크기는 높이 177㎝, 너비 38㎝, 두께 68㎝ 정도이다. 지붕돌[옥개석(屋蓋石)], 비신(碑身), 귀부형(龜趺形)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석문]
제액(題額)은 ‘가선대부개성유수낙포이공신도비(嘉善大夫開城留守洛浦李公神道碑)’라고 쓰여 있다.
[현황]
신도비의 북쪽에는 귀래정(歸來亭)이 위치하며, 정면 1칸과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