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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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金氏[舊] |
영어의미역 | Andong Gim Clan[Old] |
이칭/별칭 | 상락김씨(上洛金氏),구안동김씨(舊安東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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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신라 말 |
성씨시조 | 김숙승(金叔承) |
[정의]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김씨[구](安東金氏 舊)는 시조 김숙승(金叔承)의 6세손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을 중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득성조 이래 계속하여 안동에 살면서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두 김씨 중의 하나로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신](安東金氏 新)과 구별되며 상락김씨(上洛金氏)로도 불리며 안동 풍산에 세거해왔다.
[연원]
김숙승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로서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이며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김방경은 병부상서를 지낸 김효인(金孝印)의 아들로서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에 살았으며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원종 때 삼별초의 난과 왜구를 토평한 명장으로 상락군(上洛郡: 상락은 현 경상북도 상주의 옛지명)에 봉해졌다. 김방경의 후손들이 김숙승을 시조로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거하였다.
[입향경위]
김방경의 장자 김선(金愃)은 전법판서를 지냈고, 차자 김흔(金忻, 1251~1309)은 도첨의사사를 거쳐 삼중대광에 올라서 아버지를 이어 상락군에 습봉되었다. 셋째 아들 김순(金恂, 1258~1321)은 1279년(충열왕 5)에 문과에 급제하여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문한학사를 끝으로 은퇴한 후 중대광 상락군에 봉해져서 아버지의 작위와 식읍을 이어받았고 문영(文英)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김순의 아들 김영돈(金永旽)은 좌정승에 올랐고, 영돈의 동생 김영후(金永煦)는 우정승을 지내고 상락후(上洛侯)에 봉해졌다. 김영후의 손자 낙포(洛圃) 김사형(金士衡, 1333~1407)은 좌정승과 우정승을 역임하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이 되었으며 시호는 익원(翼元)이다. 김사형의 아들 김돈(金墩)은 문과에 올라 이조판서를 지냈고, 김돈의 아우 김승(金陞)은 밀직사사를 지냈다.
단종복위 거사를 도모하던 동료를 고변하여 사육신의 한을 남기고 뒤에 정승에 까지 오른 쌍곡(雙谷) 김질(金礩, 1422~1478)은 김승의 손자이다. 또 김방경의 장자 김선의 손자 김묘(金昴)의 아들 김구용(金九容, 1338~1384), 김제안(金齊顔), 김구덕(金九德)은 모두 과거를 거쳐 각각 평장사, 추밀원사, 돈녕부사에 오르는 등 상락김씨는 여말선초에도 이름 있는 이들이 많았다.
상락김씨는 김방경의 현손 때에 여러 계파로 갈라지는데 안동 일원에는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와 익원공파(翼元公派)가 많이 살고 있다. 김묘의 동생 김면(金冕)의 손자 김자첨(金子瞻) 때 의성 사촌으로 이거한 도평의공파는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등 명현을 배출하였다.
[현황]
김사형을 파조로 하는 익원공파는 현재 풍산읍 소산리, 와룡면 주계리 용두골, 남후면 개곡리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관련유적]
풍산읍 회곡리에 김방경의 옛 집터에 유허비가 남아있으며, 평소 자연을 즐기던 회곡리 앞 낙동강가의 경승인 상락대(上洛臺)가 있다. 김방경의 묘소, 재사, 신도비가 녹전면 죽송리에 있고, 풍산읍 소산리에 상락김씨 종택 삼소재(三素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