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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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宣平 |
영어음역 | Gim Seonp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고려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공신.
[활동사항]
김선평은 926년(경애왕 3) 고창성주(古昌城主: 고창은 안동의 옛 지명)가 되었으며, 930년(경순왕 4) 이른바 고창 전투에서 권행(權幸)[안동권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 안동장씨의 시조)과 함께 향병(鄕兵)을 모아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견훤을 물리쳤다.
김선평의 행적과 관련하여 두 가지 기록이 전한다. 우선 『고려사(高麗史)』에는 “태조 13년(930) 병술일에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고창군 병산(甁山)에 주둔하였으며 견훤은 석산(石山)에 주둔하니 양군의 거리가 5백 보쯤 되었었다. 드디어 접전하여 저물 때까지 계속하였는데 견훤이 패배하여 달아났다. 백제 시랑 김악(金渥)이 포로가 되고 전사자가 8천여 명에 달하였다.
이날에 고창군에서 아뢰기를 견훤이 장수를 보내 순주(順州)를 공격 함락하고 민가들을 약탈하여 갔다고 하였다. 왕이 곧 순주로 가서 그 성을 수리하고 장군 원봉(元奉)에게 책벌을 주었다. 경인일에 고창군 성주 김선평을 대광(大匡)으로 임명하고 권행, 장길(張吉)을 대상(大相)으로 임명하였다. 이때에 영안(永安, 현 경상북도 안동), 하곡(河曲, 현 경상북도 울산), 직명(直明), 송생(松生, 경상북도 청송) 등 30여 군현이 서로 잇대어 항복하여 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김선평의 후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지은 「태사묘단기(太師墓壇記)」에는 “신라 말에 고창성주로 되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토벌함에 권행, 장길과 더불어 군으로써 귀부하니 태조가 얻어 드디어 병산의 승첩이 있고, 이로 말미암아 의성이 더욱 떨치었으며 마침내 견훤을 멸하였다.
왕건이 김선평을 대광에 배하고 권행과 장길을 대상으로 삼아, 모두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의 호를 주고 태사(太師)의 벼슬을 시키며 고창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였다. 이후 안동의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생각하여 권행과 장길과 함께 향사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니 사적은 퇴계(退溪) 이문순공(李文純公)이 지은 기문(記文)에 갖추어져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선평은 훗날 신안동김씨(新安東金氏)의 시조가 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24-1번지 안동 태사묘(太師廟)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