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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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䋠 |
영어음역 | Gwon Bo |
이칭/별칭 | 계응(季凝),수곡(樹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석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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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709년(숙종 35) |
몰년 | 1778년(정조 2)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응(季凝), 호는 수곡(樹谷). 권단(權摶)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징(權憕), 아버지는 병곡(屛谷) 권구(權榘),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 이의(李檥)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명준(安命駿)의 딸이다. 형으로 권진(權縉)과 권집(權緝)이 있다.
[활동사항]
권보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아버지 권구가 연루되어 서울로 압송된 일이 있은 후,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형 권진, 권집과 함께 두문불출하며 심신을 수련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데만 전념하였다. 평소 김낙행(金樂行), 박손경(朴孫慶), 이상진(李象辰), 류종춘(柳宗春) 등과 교유하였다.
수졸안분(守拙安分: 본분을 지킴)을 학문과 수행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여겼으며, 『맹자(孟子)』를 가장 열심히 공부하였다. 조선의 역사와 지리에도 정통하여 오운(吳澐)이 지은 『동사찬요(東史纂要)』를 자신의 관점에서 비평하였다. 김도화(金道和)가 지은 묘지명에 따르면, 권보는 천부적인 자질이 고아하고 깨끗하였으며 약관에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꿰뚫었고 천문과 수학까지 널리 이해하였다고 한다. 권보는 도학자(道學者)라기 보다는 문학자(文學者) 혹은 경세가(經世家)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6권 3책의 석인본(石印本) 『수곡집(樹谷集)』이 있다. 문집 중 연작시 「우중즉사(寓中卽事)」는 흉년으로 백성들이 고통 받고 신음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복족(福足)」은 산척(山尺: 산속에 살면서 사냥하고 약초 캐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괴로운 삶을 가감 없이 형상화하고 있다. 편지 가운데 고려시대의 흑창(黑倉)과 성종대의 상평창(常平倉) 등 환정(還政)에 대하여 그 기원을 밝히고 세목을 나누어 제도나 혹은 폐단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하여 조항별로 설명한 것이 있다. 기타 조선의 사적(事蹟)과 향리의 자연풍경을 기록한 『국조사적(國朝事蹟)』, 『병산풍물지(屛山風物志)』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