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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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榘 |
영어음역 | Gwon Gu |
이칭/별칭 | 방숙(方叔),병곡(屛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방숙(方叔), 호는 병곡(屛谷).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권징(權憕),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현감 류원지(柳元之)의 딸, 처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이현일(李玄逸)의 손녀이다.
[활동사항]
권구는 1672년(현종 13) 안동 지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동문 권두경(權斗經), 이재(李栽) 등과 교유하였다. 당시 살고 있던 안동부(安東府) 족적동(足積洞)에서 사창(社倉)을 열어 흉년에 빈민들을 구제하였으며, 향약을 실시하여 고을에 미풍양속을 일으켰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영남에 파견된 안무사(按撫使) 박사수(朴師洙)는 권구의 이름이 이인좌 무리의 공초에 들었다면서 적당에 가담할 우려가 있다 하여 권구를 서울로 압송하였다. 그러나 권구의 인품에 감동을 받은 영조의 특지(特旨)로 권구는 곧 석방되었다.
[학문과 사상]
권구는 경학(經學), 예설(禮說), 성리설(性理說) 등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이기설에 있어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 또 천문, 역수(曆數), 역학(易學), 『사기(史記)』 등에도 매우 조예가 깊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병곡집(屛谷集)』 10권 5책이 전한다. 문집에는 『경의취정록(經義就正錄)』, 『독역쇄의(讀易瑣義)』, 『기형주해(璣衡註解)』, 『여사휘찬의의(麗史彙纂疑義)』 등 학술적 저술, 18세기 안동 지방의 역사와 인물을 알 수 있는 『천유록(闡幽錄)』, 옛날 명훈(名訓)을 한글로 번역한 『내정편(內政篇)』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문집은 1797년(정조 21) 사인(士人) 김필형(金弼衡)의 발의로 외손 류일춘(柳一春)이 주도하여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목판본 원집 8권, 부록 2권으로 간행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 정산(井山) 남쪽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80년(정조 4) 권명우(權明佑)가 권구의 생질 김서경(金瑞景)이 지은 「실록기략(實錄記略)」과 권보(權䋠)의 「상기(詳記)」를 바탕으로 가장(家狀)을 짓고, 이상정(李象靖)이 행장(行狀)을 찬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