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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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箕報 |
영어음역 | Gim Gibo |
이칭/별칭 | 문경(文卿),창균(蒼筠),금산(金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민석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경(文卿), 호는 창균(蒼筠)·금산(金山). 증조부는 남대장령(南臺掌令)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할아버지는 좌승지를 지낸 김영(金瑛), 아버지는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를 지낸 김생락(金生洛), 처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찰방을 지낸 벽오(碧梧) 이문량(李文樑)의 딸이다. 증조부 대부터 대대로 벼슬살이를 하여 김기보도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이문량의 딸에게 장가를 들어 안동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활동사항]
김기보는 외할아버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외삼촌 이중량(李仲樑), 이숙량(李叔樑)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 되었다. 음보로 언양현감, 거창현감, 회인현감을 지냈는데 회인현감으로 있던 1586년에 장문의 진폐소(陳弊疏)를 올려서 과중한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으며 재임 중인 1588년 5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문집으로 『창균집(蒼筠集)』이 있다. 문집 중 「관동행록(關東行錄)」은 관동 유람을 떠나 스승 이황에게 보낸 기행시로 이황은 이 시를 보고서는 헛된 걸음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타고난 자질이 고명한데 헛되이 세월만 보내니 안타깝구나. 뒷날 실패한 뒤에 내 말이 생각날 것이다.”라고 훈계하였다고 한다. 김기보의 사장(詞章)은 이황의 제자들 중에 특히 뛰어났다고 평가받았으나 병란으로 소실되어 시문 약 40여 편만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역동(驛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