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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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邦杰 |
영어음역 | Gim Banggeol |
이칭/별칭 | 사흥(士興),지촌(芝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석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흥(士興), 호는 지촌(芝村). 증조부는 약봉(藥峯) 김극일(金克一), 할아버지는 김철(金澈), 아버지는 김시온(金是榲), 어머니는 풍산김씨(豊山金氏)로 지평 김봉조(金奉祖)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방걸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제수되었다. 1662년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거쳐 전적, 감찰을 지내고 1666년 예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옥구현감에 임명되었다. 1675년(숙종 1) 평안도사와 예조좌랑겸병조정랑으로 전임되었다. 그해 겨울 다시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1676년 사간원정언에 취임하였다.
1677년 사헌부장령 재임시 임금에게 시폐(時弊)를 상소하면서 폐단을 바로 잡는 방법으로서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할 것과 퇴폐된 기강을 바로 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온갖 시기가 있어서 곧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그 뒤 수찬, 사간을 거쳐 1690년 다시 응교를 거쳐 승정원동부승지로 올랐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1692년 사간원대사간에 오르고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694년 전라도 동복으로 귀양을 가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지촌집(芝村集)』이 있다. 문집은 책머리에 류치명(柳致明)의 서문이 있고 권1에 시 95수, 권2에 소(疏) 20편, 권3에 서(書) 65편과 잡저(雜著), 축문(祝文), 제문(祭文) 등이 실려져 있다. 권4는 부록으로서 만사(挽詞), 제문(祭文), 김방걸의 행장, 묘갈명, 묘지명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800년(정조 24) 후손 및 지방 사림의 발의로 지산서당(芝山書堂)을 건립하여 김방걸의 유덕을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