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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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瑛 |
영어음역 | Gim Yeong |
이칭/별칭 | 영지(英之),삼당(三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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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
성별 | 남 |
생년 | 1475년 |
몰년 | 1528년 |
본관 | 안동 |
대표관직 | 강원도관찰사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영지(英之), 호는 삼당(三塘). 할아버지는 김계권(金係權)이고, 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김영수(金永銖)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로 김박(金博)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영(金瑛, 1475~1528)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란 말을 들었는데, 종조할아버지 보당 김계행(金係行)에게서 글을 배웠다. 21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06년(중종 1)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예문관검열로 사가독서(賜暇讀書: 유능한 젊은 문신들을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하였다.
1507년(중종 2) 대교(待敎)에 올라 예문관봉교 김흠조(金欽祖)·정충량(鄭忠樑), 대교 이희증(李希曾), 예문관검열 권벌(權橃)·이말(李沫)·정웅(鄭熊)·윤인경(尹仁鏡)·윤지형(尹止衡) 등과 더불어 사신(史臣)의 정도(正道)를 내세우며 사초(史草) 문제로 빚어졌던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자들의 억울함을 상소하여 신원되게 하였다. 그 뒤 홍문관수찬·사간원정언·교리·사헌부장령 등 청요직을 지냈다.
1518년(중종 13)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었다가 곧바로 김제군수로 외직에 나아갔다. 1522년(중종 17) 다시 사헌부장령이 되었으며, 이어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527년(중종 22) 강원도관찰사에 보임되었으나 대간의 탄핵으로 곧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광조(趙光祖) 등 중종 때의 사림파와 언로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등 정치적 성격을 달리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삼당집(三塘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회현면 낙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동시에 있는 역양서원(嶧陽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