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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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銖 |
영어음역 | Gim Yeongsu |
이칭/별칭 | 진수(進銖),학일(學一),만산(晩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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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
성별 | 남 |
생년 | 1862년 |
몰년 | 1925년 |
본관 | 의성 |
대표경력 | 장기군수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개설]
본관은 의성. 초명은 진수(進銖), 자는 학일(學一), 호는 만산(晩山). 아버지는 낙포(樂圃) 김재로(金載輅)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석중(權錫重)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영수(金永銖, 1862~1925)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과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1891년(고종 28) 문과에 급제하였다. 1905년(고종 42) 정6품의 품계인 승훈랑(承訓郞)에 올랐으나 어지러운 나라의 형국을 보고 귀향하였다. 1908년(순종 2) 장기군수에 제수되어 어염(魚鹽)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권장하는 등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당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벼슬을 버린 뒤 고향으로 돌아와 벽에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걸어 놓고 날마다 읊조리면서 울적한 심정을 달랬다. 1918년 둔장을 거두어 집 한 채를 지어 만산당(晩山堂)·고석정(古石亭)·송석대(松石臺)라 이름 지은 뒤 용강정사(龍岡精舍)라는 편액을 달았다. 그러고는 날마다 그곳에서 상영(觴詠)을 일삼으면서 세상을 잊고 지내었다.
1919년 여러 친족들과 함께 평장사공의 신단(神壇)을 집 뒤에 모시고 비음기(碑陰記)를 지었다. 1920년 고조(高祖) 이하의 무덤에 묘지석을 두고 묘지명을 지었으며, 1922년 대종회를 설치하여 대동보와 첨사공의 신도비 건립을 의논한 뒤 대동보의 서문을 짓고 신도비명의 초안을 찬술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만산문집(晩山文集)』 4권 2책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안동시 녹전면 둔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