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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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隆達 |
영어음역 | Nam Yungdal |
이칭/별칭 | 현언(顯彦),나재(懶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명수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현언(顯彦), 호는 나재(懶齋). 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다. 아들로 남급(南礏)과 남연(南碝)을 두었다.
[활동사항]
남융달(南隆達, 1565~1652)은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 시험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효행이 지극하여 선조가 관직과 포상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1627년 예천의 용궁에서 우거하고 있을 때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강화의 소식을 듣고 그만두었다. 만년에는 예천에서 안동의 풍산으로 세거지를 옮겨 입향 시조가 되었으며, 영양남씨 족보를 편찬하여 가문의 내력을 밝혔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문집인 『신안세고(新安世稿)』가 있는데, 남급과 남연·남천한(南天漢)의 문집을 한데 묶어 간행한 글이다. 정묘호란 때 「의청약속(義廳約束)」(9개 조항)을 지었다.
[묘소]
묘소는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75년(숙종 1) 정려가 내려지고, 정3품의 문관 품계인 통훈대부 사복시정과 통정대부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에 추증되었다. 또한 자손들이 명성을 얻어 행용양위부호군에 제수되었다.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봉암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