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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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礏 |
영어음역 | Nam Geup |
이칭/별칭 | 탁부(卓夫),유유헌(由由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명수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탁부(卓夫), 호는 유유헌(由由軒).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남응원(南應元)이고, 아버지는 세거지를 안동 풍산으로 옮겨 신안의 시조가 된 남융달(南隆達)이다. 동생이 남연(南碝)이다.
[활동사항]
남급(南礏, 1592~1671)은 우복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30년(인조 9) 학문으로 천거되어 효릉참봉, 경기전참봉, 사옹원봉사, 종묘서직장, 의흥현감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사옹원봉사의 직책으로 임금을 호종(扈從)하였다. 이후 벼슬에서 물러나 가사에 전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문집인 『신안세고(新安世稿)』와 임금을 호종할 때의 기록인 『병정일기(丙丁日記)』, 농사를 연구한 『농잠요어(農蠶要語)』가 있다. 『신안세고』는 남융달과 남연·남천한(南天漢)의 문집을 한데 묶어 간행한 글이고, 『병정일기』는 병자호란 1636년 12월 11일부터 이듬해 정월 환도하여 신주와 위패를 봉안한 후까지의 기록이다. 1649년(인조 27) 안동 사림에서 김성일(金誠一)의 문집을 간행할 때 교정 일을 맡아 하였다.
[묘소]
묘소는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병자호란 때 임금을 호종한 공을 인정받아 1691년(숙종 17)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1802년(순조 2) 안동의 유림인 김굉, 남범구 등에 의해 안동시 풍산읍 매곡리에 있는 봉암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