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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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致德 |
영어음역 | Ryu Chideok |
이칭/별칭 | 도준(道峻),근암(近庵),유치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도준(道峻), 호는 근암(近庵). 아버지는 류혼문(柳渾文)이다.
[활동사항]
류치덕(柳致德, 1823~1881)은 큰할아버지인 류건휴(柳健休)에게 수학하였고 류치명(柳致明)의 문하에 들어가 학업을 성취하였다. 이기사칠설(理氣四七說)과 태극동정지기(太極動靜之機)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 나름의 일가견을 이루었다. 또 예학(禮學)에도 밝아 역대 예지(禮志)와 국조전헌(國朝典憲)을 수집하여 지은 『전례고증(典禮考證)』은 정밀한 교감(校勘)과 상세한 절목, 풍부하고 다양한 예증으로 우리나라 예학 연구에 필수 자료이기도 하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전례고증』 12책과 『근암집(近庵集)』, 『임려문답(林廬問答)』 등이 전한다. 『근암집』은 류치덕의 아들 류진호(柳震鎬)와 류관호(柳觀鎬)가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서(書)에는 주로 스승 및 친구, 제자들과 학문상의 문제점을 질의하고 토론한 내용이다. 잡저(雜著)의 「만록」은 이기사칠론과 태극동정지기를 깊이 있게 논변한 것이다.
『임려문답』은 학문에서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에 걸친 여러 제도의 모순점을 선유들의 학설을 참고하여 날카롭게 논박하는 한편,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토지 제도와 구황 정책에서 곡가 안정, 조세 제도, 관제 모순, 병제 및 교육기관과 제도 등을 통하여 류치덕의 진보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