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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28
한자 李光靖
영어음역 Yi Gwangjeong
이칭/별칭 휴문(休文),경실(景實),소산(小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종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714년연표보기
몰년 1789년연표보기
본관 한산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 한산(韓山). 자는 휴문(休文), 호는 경실(景實)·소산(小山). 할아버지는 이석관(李碩觀), 아버지는 이태화(李泰和),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딸이다. 양부는 이지화(李志和)이며, 형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다.

[활동사항]

이광정은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서 태어났다. 1740년(영조 16) 전시에 실패한 후 다시는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1753년(영조 29) 어사 이득종(李得宗)이 영남의 인재 3인을 천거하면서 으뜸으로 넣었으나 이미 출세의 뜻을 버린 이후라 학문 연구에만 정진하였다. 1783년(정조 7) 정조가 “이상정의 아우 광정은 학문과 행검(行儉)으로 도내에 칭송되어 그 형의 풍도를 지녔다 하니 가상한 일이다.” 하고 이조에 명하여 기용하도록 하여 온릉참봉(溫陵參奉), 동몽교관,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에 잇달아 제수되었으나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학문과 사상]

이광정은 일찍이 밀암 이재의 문하에 나아가 수업하면서 스승으로부터 ‘학문은 구방심(求放心)을 위한 것이니 학문에 전념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재의 영향으로 이광정도 “학문의 요체인 박학(博學), 독지(篤志), 신사(愼思), 명변(明辯)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요컨대 행실을 독실하게 하고자 함인데 사람이 한 가지를 알면 한 가지를, 두 가지를 알면 두 가지를 행해야만 그것이 참된 공부요, 학문이라 할 것이다. 만일 알고서도 행하지 않으면 천하의 이치를 모두 꿰뚫어 알고 있더라도 그 지식이 자기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하며 실천적인 학문을 중요시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소산집(小山集)』 13권 7책이 있다. 『소산집』은 그 간행 경위가 확실하지 않으나 1810년(순조 10) 이후 1834년(헌종 1) 이전인 순조(純祖) 연간에 이병원(李秉遠), 이병운(李秉運) 등의 종손(從孫)이 중심이 되어 목판으로 간행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묘소]

묘소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89년 대산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고산서원(高山書院)에 유림의 공의로 1985년부터 이광정을 배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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