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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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敎熙 |
영어음역 | Ryu Gyohui |
이칭/별칭 | 성목(聖穆),일성(一醒),유교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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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886년 |
몰년 | 1965년 |
본관 | 전주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목(聖穆), 호는 일성(一醒)이다. 188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류교희는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류교희는 1919년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류교희는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었다. 또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80년에 건국포장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