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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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東洙 |
영어음역 | Ryu Dongsu |
이칭/별칭 | 노승(魯升),유동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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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
성별 | 남 |
생년 | 1887년 |
몰년 | 1978년 |
본관 | 전주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노승(魯升). 1887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류동수는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류동수는 1919년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류연성(柳淵成)·류교희(柳敎熙)·박진성(朴晋成) 등과 만세시위를 계획·준비한 류동수는 임동면 마령리 주민을 동원하여 참여시킬 책임을 맡았다. 드디어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그는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또 류연성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류동수는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류동수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를 거쳐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는 임동면 편항시장 만세시위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 중 가장 높은 형량을 받은 것이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건국포장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