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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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棟欽 |
영어음역 | Yi Dongheum |
이칭/별칭 | 인길(人吉),이고(貳顧)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인길(人吉)이며, 호는 이고(貳顧)이다. 할아버지는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단식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이고, 아버지는 파리장서의거(제1차 유림단 의거)의 주역으로 활동한 이중업(李中業)이다. 1881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67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이동흠은 1918년 4월 2일 봉화군 법전면의 자산가 이정필(李廷弼)에게서 대한광복회 명의로 군자금 모금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면장 이명호(李明鎬)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 통고문 발송과 관련된 사건으로 말미암아 1918년 1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 무렵 대한광복회 단원이었던 박상진(朴尙鎭)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안동으로 왔을 때 자신의 집에 숨겨 주기도 하였다.
이동흠은 1925~1926년에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을 중심으로 전개된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동생 이종흠(李棕欽)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1926년 5월 10일 이 활동이 적발되어 동생과 함께 일본 경찰에 끌려가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1927년 2월 10일 이동흠은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免訴)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