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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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東 |
영어음역 | Yi Sangdong |
이칭/별칭 | 이용희(李龍羲),건초(健初),만진(晩眞)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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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
성별 | 남 |
생년 | 1865년 |
몰년 | 1951년 |
본관 | 고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고성(固城). 다른 이름은 이용희(李龍羲)이다. 자는 건초(健初), 호는 만진(晩眞)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1865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안동면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에 거행될 예정이었으나 기획 단계에서 주동자들이 체포되면서 무산되었다. 그러나 시위 예정일 이틀 뒤인 3월 13일 이상동이 안동면 장날을 이용하여 단독으로 만세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본격적인 만세 운동이 안동 지역뿐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이상동은 태극기 형태의 종이 연에 ‘대한독립만세’라는 문구를 써 넣고 3월 13일 오후 5시 30분경 공신상회(현 신한은행 앞 성결교회 입구) 앞 도로를 질주하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같은 단독 시위는 안동 지역에서 3·1운동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던 유림 및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기폭제 구실을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이상동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