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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737
한자 李雲鎬
영어음역 Yi Unho
이칭/별칭 춘강(春岡)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류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295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3년연표보기
몰년 1942년연표보기
본관 진성
대표경력 신간회 안동지회 회장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운호(李雲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춘강(春岡)이다. 1893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이운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장터에서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 참여하여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이광호·이동봉 등의 주동자와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5월 19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0월 21일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안동 지역에서 계몽운동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류인식(柳寅植)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구국 교육운동을 펼쳤다. 1920년 7월 예안청년회 창립에 참여하였고, 이듬해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으며, 1925년 8월 안동청년연맹이 주관한 강연회에서 ‘청년연맹의 필요성’이란 주제로 연설하였다.

이운호는 1927년 8월 신간회 안동지회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29년 1월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 고려공산청년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이운호는 1930년 경북공산당사건으로 검거되어 12월 2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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