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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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源永 |
영어음역 | Yi Wonyeong |
이칭/별칭 | 봉경(鳳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706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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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706 |
성별 | 남 |
생년 | 1886년 |
몰년 | 1958년 |
본관 | 진성 |
대표경력 | 목사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원영(李源永)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호는 봉경(鳳卿)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58년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이원영은 1909년(순종 3) 예안의 진성이씨 문중 학교인 보문의숙을 다녔으며, 1911년 3월 졸업하였다. 이후 예안의 유림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조방인·김진휘·조병건 등과 함께 1919년 3월 17일에 일어난 예안면 시위를 계획,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 이원영은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이원영은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인 이상동(李相東)에게서 기독교 신앙을 전도 받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 12월 18일 목사가 되었다. 1939년부터 1942년 사이 신사참배거부 투쟁을 펼치던 이원영은 세 차례나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