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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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中彦 |
영어음역 | Yi Jungeon |
이칭/별칭 | 중관(仲寬),동은(東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의병|순국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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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
성별 | 남 |
생년 | 1850년 |
몰년 | 1910년 |
본관 | 진성 |
대표경력 | 선성의진 전방장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이중언(李中彦)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중관(仲寬)이며, 호는 동은(東隱)이다. 185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10년 향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다.
[활동사항]
1879년(고종 16) 대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과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880년 도산서원에서 황준헌이 『조선책략(朝鮮策略)』에서 주장하는 일본과의 개방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유림 대표 회의를 소집하는 통문을 작성하는 데 발의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고, 이어 영남만인소에도 참가하였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선성의진에서 전방장을 맡아 활약하며 함창의 태봉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서울로 올라가 이중업과 함께 ‘을사오적의 목을 베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910년 국권 피탈이 이루어지자 두문불출하다가 향산 이만도(李晩燾)의 단식 순국 소식을 듣고 자신도 순국의 뜻을 다짐하고 단식을 선언하였다. 단식을 시작한 이튿날 「경고문」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자신이 단식 순국을 결행하는 이유와 목표를 밝힌 뒤, 단식 27일째인 11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동은실기(東隱實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