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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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相吉 |
영어음역 | An Sangg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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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
성별 | 남 |
생년 | 1892년 |
몰년 | 1958년 |
본관 | 순흥 |
대표경력 | 임시정부 경상도 교통부장|풍산소작인회 집행위원|화성회 상무위원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개설]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한유(漢有), 아호는 차강(次康)이다. 189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안승국이며, 안상훈(安相勳)의 형이다.
[활동사항]
안상길이 독립운동에 나선 것은 1915년이다. 그는 대구에서 곡물상을 운영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광복회를 지원하는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1919년 8월 무렵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이 때 경상도 교통부장으로 임명된 그는 임시정부 헌법과 교통부 규칙 등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국내에 들어온 안상길은 김재봉(金在鳳)·이준태(李準泰)와 함께 임시정부 자금지원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들어온 문서가 발각되어 1921년 2월 10일 김재봉과 함께 체포되었고, 이 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1922년 3월 출옥한 안상길은 고향으로 돌아와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이준태·권오설(權五卨)·김남수(金南洙)·김원진(金元鎭) 등과 함께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23년 11월 11일에 창립된 풍산소작인회(豊山小作人會)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24년 4월에 설립된 전조선노농총동맹(全朝鮮勞農總同盟) 및 조선청년동맹(朝鮮靑年同盟)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1월 안동에서 창립된 사상단체 화성회(火星會)에 참여하여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그해 3월에는 경상북도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 결성대회에 와룡면 대표로 참석했다. 1926년 12월에는 3차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후보로 선임되었으며, 1927년 2월 민족유일당체인 신간회의 결성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고향인 안동에 신간회 안동지회를 설립하였으며, 신간회 안동지회 대표위원 및 정기대회 전형위원 및 본부 파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8월 조선공산당 경북도기관을 설치하고 책임비서가 되어, 그 해 9월 대구에서 경북도당대회를 주관하고, 신간회 내의 경상북도 및 안동 지역 조선공산당 세포를 조직하여 조선공산당 안동야체이카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28년 10월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인해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4년 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해방 후인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봉화군 대표로 참석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