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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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神 |
영어음역 | Samsin |
영어의미역 | Legendary Three Founders of Korea, Faith |
이칭/별칭 | 삼신할머니,삼신바가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정현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민간신앙 중에서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집안 신.
[개설]
삼신은 아이의 점지와 출산, 수명과 질병 등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이다. 이를 ‘삼신할머니’·‘삼신바가지’라고도 일컫는다. 삼신은 산신(産神)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3개의 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직면의 송리리에서는 천지인(天地人)을, 용각리에서는 숟가락 3개를 밥그릇에 꽂아 두고 삼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삼신은 아기의 증조모가 된다고 인식하는 곳(도산면 의촌2리, 풍산읍 하리1리와 수1리, 서후면 이송천리)도 있다. 특히 수1리의 경우, 생존하던 증조모가 돌아가시면 그 집안의 삼신은 당연히 대체되었다. 성주는 집안의 제일 어른으로 인식하여 대주, 즉 호주의 신을 말하지만 일직면 국곡리에서는 증조부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삼신의 직능과 그것에 따른 제의는 두 종류로 모셔지고 있다. 하나는 집안 식구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상으로서의 삼신이며, 다른 하나는 자녀의 출산과 성장을 관장하는 대상으로서의 삼신이다. 앞의 것은 신체를 바가지로 표현하면서 안방 시렁 위에 영구적으로 모셔지는 반면에, 뒤의 것은 ‘삼신할매’로 표현되면서 자녀를 출산하면 할머니가 안방에 정화수와 쌀·미역국·간장·수저 등을 상에 차려서 초칠일·두칠일·삼칠일·백일·돌에 의례를 행한 후 그 신앙 행위가 중단되는 한시적인 것이다. 이 경우에는 아기가 열 살 때까지 삼신이 돌봐준다고 인식(의촌2리)하는 사례도 있다.
[신체]
삼신의 신체는 바가지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단지(국곡리)나 버들고리(하회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안에는 햅쌀 또는 천, 천과 햅쌀 등을 넣어 두지만, 하회리의 경우와 같이 버들고리에 흰 명주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넣어 두는 곳도 있다. 곡식을 넣어 두는 경우에는 계절에 따라서 그 내용물을 달리한다. 일직면 원리의 경우에는 여름에 보리쌀을 가을에 햅쌀을 넣어 두지만, 서후면 이송천리의 경우에는 여름에 밀가루를 가을에 햅쌀을 넣어 둔다고 한다.
[절차]
신체를 모시는 방법은 바가지나 단지 안에 내용물을 넣고 한지로 덮은 후 실로 주둥이를 묶어서 안방 북쪽 시렁 위에 올려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신은 햇곡을 갈아 넣을 때 주로 손 없는 날인 초아흐렛날이나 초열흘날, 또는 열 아흐렛날이나 스무날 등으로 날을 받아서 할머니가 갈아 넣어준다. 그 이유는 햇곡을 수확한 후 조상에게 먼저 올리기 위함이다. 이전의 곡식은 밥을 지어서 가족끼리만 나누어 먹는다.
삼신에 대한 제의는 ‘치성드린다’고 표현하며, 아기의 순산을 빌 때와 아기가 아플 때,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이사 갈 때와 같은 임시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치성은 주로 아침 식전에 할머니(또는 어머니)가 머리를 깨끗이 감아 빗고, 옷을 깨끗하게 입은 다음 행한다.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는 ‘첫 밥’이라고 하여 밥을 지어서 상에 차려 삼신에게 바친다. 그리고 아기를 출산했을 때에는 3일째·초칠일·두칠일·세칠일·백일이 되는 날 정화수와 미역국, 밥 한 그릇을 떠놓고 할머니(또는 어머니)가 행한다. 이것은 산모의 젖이 많이 나오고,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의촌2리의 경우, 칠일 때는 밥과 미역국, 정화수를 떠 둔다. 그러나 백일 때는 밥과 미역국, 그리고 아기의 소견이 넓어지라는 의미로 망두떡과 장수의 의미를 지닌 백편, 무병(無病)을 기원하는 의미의 수수떡,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실을 상에 차린다.
돌 때에는 밥과 미역국, 책, 실, 연필, 돈을 상에 차린다. 이때에는 할머니(또는 어머니)가 아기의 훌륭한 성장을 기원하기 위해, “어진 삼신님, 아침 이슬에 물 구르듯, 초승에 달 구르듯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시고, 눈에 열기, 손에 재주, 입에 말문 주시고, 무병장수하게 해 주십시오. 앉아도 삼천리, 서도 삼천리, 구만리 장천리를 보시는 삼신님이 뭐를 모르실껴. (말을) 안해도 아시지요마는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게 해 주십시오.”(의촌2리)라고 한다.
[사례]
1. 임동면 고천2리의 경우
삼신은 자녀의 출생과 관련된 신으로, 고천2리에서는 ‘삼신할매’라 부른다. 삼신할매의 신체는 삼신바가치[삼신바가지]이다. 고천2리에서는 김태연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정에서 건궁 삼신을 모시고 있다. 김태연의 집에서는 삼신바가치를 신체로 모신다. 삼신바가치는 오래 전 시어머니 때부터 모셔오던 것이며, 해마다 햇곡이 나면 바가치 안의 쌀을 갈아주고, 옷도 새로 입힌다. 옷을 새로 입힌다는 것은 바가치 위에 덮은 한지를 새로 갈아주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삼신바가치가 있을 때에는 해마다 햅쌀이 나면 묵은 쌀을 꺼내고 햅쌀로 갈아주었다. 묵은 쌀로는 밥을 지어 먹는데, 이 밥은 꼭 식구들끼리만 먹는다. 그 이유는 삼신할매를 모신 신성하고 복된 쌀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꼭 식구들과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삼신할매를 위하는 때는 성주를 위할 때와 같다. 즉 정월 초하루·정월 대보름·햇곡 날 때·동지 등 정기적으로 의례를 행한다. 그러나 비정기적인 의례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거나, 아이의 백일과 돌 등에도 삼신을 모신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우선 집에 금줄을 치고, 삼칠일 동안 미역국, 물, 그리고 간장을 떠놓는다. 또한 촛불을 1개 켠다. 백일과 돌 때는 백설기와 만두·수수떡을 해서 상에다 더 놓는다. 상차림이 끝난 후에는, “아이들의 건강함과 더불어 맑고 맑은 정신을 깨닫게 해 달라.”고 삼신할매에게 손빔을 한다.
김차남의 집에서는 건궁 삼신을 모셨으나, 현재는 그마저 모시지 않는다. 예전에 삼신할매를 모시고 있을 때는 명절과 매년 햅쌀이 날 때, 그리고 집안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의례를 행했다. 의례를 행할 상 위에는 대체로 물(정화수)과 미역국·밥·간장 등을 놓는다.
이영자의 집에서는 현재 건궁 삼신을 모시고 있다. 삼신의 자리는 안방 아랫목이다. 이씨는 시어머니가 하던 의례를 대물림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예전에 ‘삼신 모시는 날’은 정월 초하루·정월 대보름·10월 햇곡 날 때와 동지였다. 이씨 역시 시어머니가 하던 대로 삼신의례를 행한다. 삼신에 의례를 행할 때, 삼신할매에게는 생선을 절대 올리지 않는다. 이는 “삼신할매가 비린내 나는 생선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임하면 금소리의 경우
서순화의 집에서는 삼신을 섬기고 있다. 삼신의 신체는 박바가지로 그 안에 쌀을 넣고 그 위를 한지로 덮은 뒤 타래실로 둘러 묶었다. 안방 동쪽 천장 구석에 따로 시렁을 마련하고 그 위에 삼신의 신체를 모셔 놓았다.
서순화는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40여 년 전(1960년대) 어느 날 큰아들이 시름시름 아팠다. 무수쟁이(무당, 또는 점쟁이)에게 물으니 “삼신할매가 들라 한다.”며 날을 받아서 삼신할매를 모셔야 한다고 했다. 무수쟁이는 날을 정하면서 깨끗하게 백편을 찌고 미역국과 밥, 바가지를 준비했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박을 심어 지붕에 주렁주렁 열려 있었기 때문에 제보자는 잘 생긴 박을 하나 따 두었다. 삼신을 모시는 날이 되자, 따다 놓았던 박바가지에 쌀을 담고 깨끗한 종이를 덮은 뒤 타래실로 매고 안방구석에 시렁대를 만들어 그 위에 삼신바가지를 모셨다.
설이 되면 ‘새해문’이라고 하여 밥을 떠놓고 빌고, 가을에 햅쌀을 찧으면 성주 다음으로 밥을 떠놓고 빌며,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미역국을 상에 놓고 빈다. 삼신에게 빌 때에는, “터전잡아 앉은 삼신할매요. 그저 응시락 놋시라 앉은 할매요. 햅쌀해 놨다고 밥 떠놨니더. 그저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날 가도록 아무 거침 없그러 해주소. 그저 우리 아들네 돈 마이 마이 벌그러 하고 건강하그러 해주세이.”라고 하며 자식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삼신바가지의 쌀은 가을에 햅쌀이 날 때 갈아주는데, 먼저 쏟아낸 쌀은 밥을 지어 가족들끼리 먹는다.
황봉난의 집은 집을 새로 짓는(조사 당시) 까닭에 옛 집터 앞에 가건물을 짓고 생활한다. 제보자는 옛 집을 뜯을 때 삼신바가지를 챙겨 가건물 안 장롱 위에 모셔 두었다. 삼신의 신체는 하늘색 플라스틱 바가지 안에 찧은 쌀을 담아서 한지로 덮고 타래실을 감은 것이다. 7남매를 둔 제보자가 삼신을 섬기게 된 까닭은 맏아들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맏아들의 몸이 아프고 장가를 가려고 해도 마땅치 않아 무수쟁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삼신을 앉히라고 했다.
삼신을 앉힐 때는 금소마을에 사는 용곡댁이라는 무수쟁이가 집에 왔다. 무수쟁이가 제보자에게 그릇에 물을 담아 들게 하더니 그 그릇에 삼신의 영이 깃들어 앉을 자리를 정했다. 삼신할매를 앉힐 자리에 시렁을 만들었다. 현재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신체를 만들었지만, 과거에는 박을 심었기 때문에 박을 반으로 잘라 신체를 만들었다. 가을에 햅쌀이 나면 바가지에 든 쌀을 쏟아내고 햅쌀을 넣는다. 쏟아낸 쌀은 밥을 해 먹는데, 제보자는 여타 제보자들과는 달리 삼신바가지 안에 들었던 쌀로 지은 밥을 다른 사람과 함께 먹어도 된다고 한다.
박차생 집의 삼신은 제보자가 금소로 시집오기 전부터 시어머니가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박차생이 젊었을 때 시누이가 서울에 사는 목사와 결혼하면서 집안에 모시고 있던 삼신바가지와 용단지를 깨버렸다. 몇 년 후에 집안이 편치 않아 점쟁이에게 물으니 삼신을 앉혀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제보자는 아이를 낳지 않았을 때였는데, 삼신을 앉히고 물을 떠놓고 대접을 하면 좋다고 하여 삼신을 모셨다고 한다.
시누이가 삼신바가지를 깨버린 뒤 다시 삼신을 앉힐 때에는 시어머니가 신체를 만들었다. 예쁘게 생긴 박을 따 말린 후 반으로 갈라 안에는 작게 접은 종이를 넣었다. 바가지를 한지로 덮고 실타래로 둘러 맨 후 안방 높은 곳에 모셨다. 아이를 낳으면 삼신에게 밥과 물을 떠놓고 “잘 돌봐주고 잘 받들어 달라.”며 초칠[초칠일, 초이레]과 이칠, 삼칠날 빈다. 또 제보자 마음이 편치 않은 날에도 물을 떠놓고 빈다.
3. 북후면 신전리의 경우
신전리에서는 삼신의 신체가 없이 대부분 건궁으로 모신다. 삼신의 자리는 안방 윗목이며, 삼신으로는 보통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모신다. 삼신에 대한 의례가 치러지는 경우는 주로 아이를 낳았을 때이다. 이때에는 안방 윗목의 삼신 자리에 물을 떠놓거나, 미역국을 끓여 밥과 함께 차려 놓기도 한다.
삼신이 ‘나갈 때’에는 흔히 삼신의 신체인 ‘삼신바가치(삼신바가지)’를 깨어버린다고도 하지만 제보자들은 삼신의 신체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권동기의 경우, 몇 년 전에 삼신이 나갔지만 아직도 신체로 모시던 바가지는 쌀을 비워 집안의 한 켠에 두었다. 함부로 버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장숙남의 집에서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시할머니를 삼신으로 모셨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점쟁이를 통해 시어머니가 용으로 들어오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삼신바가지를 깨버리고 시어머니를 용단지로 모셨다. 이 집에서는 이미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꺼칠용[거칠용]으로 섬기고 있다.
[변천]
삼신신앙은 1970년대 새마을사업의 진행 과정과 함께 급격히 소멸되었다. 특히 임하면 천전리의 경우와 같이 새마을 우수마을로 지정되었던 곳은 삼신을 모시는 집이 한 집도 없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