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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354
한자 三太師-車戰-
영어의미역 Three Great Teachers and Chariot Game of the An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집필자 한양명

[개설]

삼태사와 차전놀이는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등이 안동 병산전투에서 지렁이로 변한 견훤을 격퇴시킨 역사적 사건과 차전놀이와의 관계를 알려주고 있다. 삼태사가 고려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고 난 후 군민과 등짐장수들을 모아 승리를 축하하면서 차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안동차전놀이는 1937년까지 연중행사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낮에 강변 백사장이나 벌판에서 거행되다가 일제강점기에 금지되었다.

8·15광복 후 1958년 건국 10주년 기념행사로 공보부가 전국 민속예술제전을 개최하면서 다시 부활하였고, 1966년에는 안동농업중고등학교 학생이 본격적 차전놀이를 연출하였다. 1969년에는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보급회가 설립되었다. 이 해에 안동차전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면서 차전놀이의 대표격이 되었다.

[차전의 연원]

안동 지역의 대동놀이인 차전놀이는 삼태사가 주도한 고창전투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930년(신라 경순왕 4) 안동에서 벌어진 왕건군과 견훤군 사이의 싸움을 ‘고창전투(古昌戰鬪)’ 혹은 ‘병산전투(甁山戰鬪)’, ‘병산대첩(甁山大捷)’이라고 부른다. 이 전투는 안동사의 한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도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려 태조는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김선평, 권행, 장정필을 삼태사라고 하였다. 삼태사는 안동부 3대 토성(土姓)의 수장(首長)으로서 안동 김·권·장씨의 시조가 되었고, 왕건으로부터 삼한공신(三韓功臣)의 칭호를 받았다. 1608년 선조 때 차전놀이의 양편을 동부·서부로 구분할 때, 읍부는 안동 시내 천리천을 경계로 하였고, 면부는 낙동강 주류 북강을 경계로 나누었다고 한다.

[차전 관련 전설]

안동 차전놀이의 기원 전설은 병산전투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기지시 줄다리기’, ‘언양의 줄다리기’, ‘영산의 쇠머리대기’, ‘광산 고싸움’ 등이 그 지역의 풍수지리적 형국과 관련된 기원 전설을 갖고 있는데 비해 안동 차전놀이는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기원 전설을 갖고 있다. 차전의 기원과 연관된 전설로는 다음의 세 가지가 전해진다.

1. 후백제 견훤이 삼국통일의 야망으로 신라를 멸하고 여세를 몰아 안동에 진격하였을 때 당시 성주(城主) 김선평, 형관(刑官) 권행과 장정필 등 세 사람은 고려 왕건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견훤이 지렁이의 화신임을 알고 많은 소금을 낙동강 물에 푼 뒤 군민 전체가 단결하여 인해전술로 견훤군을 강물로 밀어 붙여서 참패케 하였다. 이로 인하여 왕건은 고려를 창건하고, 위의 세 사람을 개국공신으로 태사에 봉하였다. 이후 안동 사람들은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차전을 전승하여 왔다.

2.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견훤에게 패배한 왕건고창(古昌: 당시 안동의 지명)으로 후퇴하니 견훤군이 추격하여 합장다리[合戰橋: 안동시 서편 3㎞]에서 또 한 번 왕건군에게 타격을 가하였다. 왕건은 고창 성내로 패주하여 성주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성주 김선평권행, 장정필과 함께 왕건군에 가담하여 고창군민을 총동원하여 병산(안동시 북방 4㎞)에 주둔하였다.

이때 견훤왕건을 앞지르려고 합장다리에서 서북편 모래골(沙谷)로 행진하여 석산(石山)과 제수봉(猪首峰: 현재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진을 치고 대치하며 겨울을 났다. 그 동안 견훤군은 기고만장하여 오만방자하게 유흥을 일삼았으나 삼장군(김선평, 권행, 장정필)은 하루도 빠짐없이 군민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며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편 제수봉 기슭에는 안중노파[安中嫗]가 주막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평소 군민의 동정에 감사하여 성주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있던 차에 마침 적진 중에 있음을 기화로 적의 동태와 기밀을 탐지하여 일일이 삼장군 진영에 보고하였다. 그 가운데 견훤은 매일 한 차례씩 개천이나 늪에서 목욕을 해야만 원기를 회복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견훤이 지렁이의 화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비밀리에 많은 등짐장수를 시켜서 소금을 비축하였다가 해동과 더불어 어둠을 틈타 주변의 물웅덩이와 개천을 간수(소금물)로 만들었다. 이때 안중노파는 고삼주(苦蔘酒: 속칭 닭똥소주)를 빚어서 적군의 장졸들에게 대접하여 만취케 한 뒤 이 사실을 아군진영에 통보하였다. 아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기습공격을 감행하니 적은 삽시간에 궤멸하였다. 적장 가운데 김악(金渥)은 사로잡혀 참수되고, 견훤은 혼비백산하여 모래골을 지나 도주하였다.

이로써 왕건은 고려를 창건하고 삼장군을 건국공신으로 태사에 봉하였다. 승전 후 삼태사는 군민과 등짐장수를 모아 전공을 치하하고 승전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등짐장수들은 흥에 넘쳐 쪽지게(등짐장수들의 지게) 위에 우두머리를 올려 태우고 “월사 덜사”하고 승전가를 부르며 서로가 밀면서 뛰어 놀았다. “월사 덜사”에서 월사(越沙)는 견훤이 모래골을 넘어 도망가는 뜻이라고 한다. 그 후 이것을 본 군민들은 쪽지게를 본 따 놀이기구를 만들어 덕망 있는 사람을 태우고 양편으로 나누어 놀이를 하여 전승을 기념하니 이것이 차전의 효시이다.

3. 옛날 후백제의 왕 견훤은 지렁이였다. 지렁이가 사람이 되어 안동에 왔다. 안동 사람들은 이 지렁이를 몰아내기 위해서 소금배를 풀어 낙동강을 짜게 만들었다. 그리고 안동 읍민이 모두 나와 팔짱을 끼고 어깨로 지렁이를 밀어 강물에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지렁이는 짠물에 들어가 죽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안동 사람들은 지렁이를 떠밀 때처럼 떼를 지어 차전놀이를 하였으니, 놀이를 할 때는 손을 쓰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어깨로 서로 밀어댄다고 한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차전놀이]

안동의 차전놀이는 읍내를 비롯한 부근 마을들이 모두 참여하는 대동(大同)놀이이다. 동채싸움 또는 동태싸움이라고 불리는 차전놀이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청장년들의 완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정월 명절의 대표적인 놀이 가운데 하나이다. 강인한 완력을 필요로 하는 놀이라는 사실은 주민들의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용맹하고 거친 사람을 ‘동채 머리꾼 같다’고 하며, 머리꾼들이 밀백이할 때는 ‘발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고 한다.

과거 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향촌의 일상생활은 청장년층의 협동노동에 크게 의존하였다. 농한기 명절에 벌어지는 청장년의 일사불란한 차전놀이는 농번기의 노동활동을 그대로 반영하고 또한 대표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차전놀이는 정초에 청소년들이 임의로 하는 ‘째기동채놀이’로부터 고조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각 마을을 순회하는데, 같은 편 동채를 만나면 서로 어울려 놀이연습을 하기도 한다.

1. 편가름

읍내의 경우 동부 6방(坊)과 서부 7방으로 편을 나눈다. 문 밖의 경우 북강(北江)을 중심으로 7면이 동부에, 8면이 서부에 속하게 된다. 이때 출생지에 따라 소속이 정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춘천과 가평의 차전놀이의 경우 『동국세시기』에 승부를 가려 그 해의 길흉을 점친다고 전하며, 이는 현재 안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심우성은 이긴 편이 길하다는 신앙성이 돋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있어서, 최근에 생겨난 속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의 승부욕이 강하고 싸움 또한 격렬하였다. 그 결과 안동 지방에서 동부와 서부는 다소 배타적인 집단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2. 동채 제작

차전놀이는 음력 정월 10일경 동채의 제작으로부터 본격화된다. 동채의 몸체는 약 6~9m의 참나무를 고르는데, 그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무겁고 튼튼하면 수비하기에는 유리하지만 움직임이 둔하고, 또한 길고 좁으면 동채꾼이 많이 붙을 수 있지만 기동성이 떨어지는 등 장·단점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동국세시기』에는 춘천과 가평 지방의 차전놀이는 외바퀴수레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안동의 경우에는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며 그 모양은 사다리에 가깝다.

3. 동채꾼 구성

동채꾼은 크게 대장, 머리꾼, 앞채꾼, 뒤채꾼, 놀이꾼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장은 놀이를 총지휘한다. 전진할 방향으로 손바닥을 향하는 수신호를 따르는데, 작은 깃발을 이용할 수도 있다. 때로는 대장이 동채에서 떨어질 때도 있다.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라면 다시 상대편 대장이 동채에 오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관례이다.

4. 놀이 방법

머리꾼은 동채 앞에 피라미드 형태로 늘어선다. 언제나 팔짱을 끼고 어깨로만 상대편을 밀 수 있으며, 그 외의 행동은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공격을 ‘밀백이’라고 한다. 머리꾼이 상대편 동채에 도달하게 되면, 앞채꾼들이 동채를 공격하게 된다. 머리꾼이 넘어졌을 경우에는 양 편이 후퇴하여 쓰러진 사람을 보호한다. 앞채꾼은 동채 앞부분을 메는 인원으로, 항상 동채와 함께 움직인다. 그러다가 상대편 동채에 도달하면 집단으로 공격을 감행하는데, 개별적인 행동은 금지되어 있다.

뒤채꾼은 앞채꾼 뒤에서 동채를 메는 인원으로 언제나 동채를 떠날 수가 없다. 따라서 행동이 굼뜨지만 힘이 센 사람들로 구성한다. 놀이꾼은 일종의 유격대와 같은 존재이다. 때로는 앞놀이꾼이 머리꾼 행세를 하며, 뒤놀이꾼은 뒤채꾼을 보호하고 교체하기도 한다. 동채는 전진할 때에는 상대편을 제압하기 위하여 높이 들고, 후퇴할 때에는 낮춘다.

동채 앞에는 머리꾼들이 포진하는데, 밀백이로 상대편을 밀어 헤치려고 한다. 틈이 생긴 상대편 머리꾼들은 재빠르게 후퇴하면서 인원이 많은 쪽으로 회전하며 전열을 정비한다. 또한 자기편 동채가 후퇴하여 사이가 벌어지면 머리꾼과 앞놀이꾼이 가담하여 메운다. 상대편이 후퇴할 때에는 여유를 주지 않고 반대편으로 돌면서 추격한다. 이러한 공방 속에서 동채가 땅에 닿거나 빼앗긴 편이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편 동채를 점령한 편에서는 그 동채를 모두 뜯어낸 후에 어깨에 메고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자축한다

[의의]

안동의 차전놀이는 대동놀이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억눌린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뭉친 집단 주체로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신명풀이라 할 수 있다. 대동은 대동소이(大同小異)·대동단결·대동세(大同世)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차별 없는 새로운 세계를 의미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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