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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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瓦里面 |
영어의미역 | Wari-m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준호 |
[정의]
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관련기록]
와리면을 소개하는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내용]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면의 호적에 편입된 호(戶)가 470호이며, 인구는 남자가 1,060명이고 여자가 1,050명이었다. 『경기지』에 수록된 「안산군읍지」에 따르면 호구수가 축소되어 381호로 나타나고 있다.
[변천]
1906년(고종 43)에 발표된 칙령 제49호 「지방 구역 조정 건」에 따라 안산군이 종래 6개 면에서 9개 면으로 확대되면서 와리면 예하에 아곡리·선곡리·신각리·적길리·무곡리·성두리·이목동·능내리·성내리·원상리·원포리·원하리·초지리·시우동 등 14개 리가 속하게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 관할구역 및 부·군 명칭, 위치, 관할구역」에 의거하여 와리면은 마유면·대월면 등과 함께 시흥군 군자면으로 통합되었다.